일부 금융지주, 그룹 차원 신용공여 한도 관리
PRS 회피처로 보는 정부 기조에 '눈총'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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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LG그룹이 2조원 규모의 PRS(주가수익스와프) 계약 등 대규모 조달을 이어가면서 금융지주들은 그룹 거래 익스포저 현황에 주목하고 있다. LG가 연초부터 국내 그룹사 중 가장 적극적인 시장 조달에 나서면서 금융사의 '핵심 고객'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동안 자금 소요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일부 금융지주 산하 증권사에서는 PRS 등 파생상품을 통한 조달이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우려하는 시선도 감지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LG그룹의 잇따른 시장 조달로 일부 금융사는 지주 차원에서 신용공여 한도 관리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LG그룹은 최근 금융사를 통해 조단위 자금을 확보하는 등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인 조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달 초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주식 575만주(2.46%), 총 1조9981억원 규모의 지분을 유동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기초로 3년간 국내 증권사들과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맺었으며, 한국투자·KB·NH·신한투자·대신증권 등 주요 대형사가 참여했다. 대신증권을 제외한 대형사들은 각각 4000억~5000억원 규모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 규모를 두고 일부 은행계 증권사는 지주 차원에서 별도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이 올해 연이은 조달을 이어가면서 금융지주 차원의 신용공여 총액이 늘어나 관리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 등 다양한 계열사를 둔 금융지주들은 대형 그룹 차주의 익스포저에 대해 자체 한도를 설정해 관리한다.
은행법상 시중은행은 동일 차주(계열사 포함)에 대해 자기자본의 25%까지만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이는 대출, 지급보증, 자금지원 성격의 유가증권 매입 등 모든 금융기관의 직·간접 거래를 포함한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규모가 크고 LG그룹 딜인 만큼 대형 증권사로서는 참여할 유인이 많은 거래”라며 “다만 금융지주 차원에서는 그룹별 한도 이슈가 있으니 검토에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디스플레이·에너지솔루션·화학 등 자금 수요가 큰 계열사들이 연달아 시장성 조달에 나서면서 LG가 SK·롯데에 이어 ‘핵심 고객’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KB금융그룹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상위 10대 주채무계열 가운데 LG그룹의 신용공여 규모는 3조5050억원이었다. SK그룹은 5조7190억원, 롯데그룹은 3조7120억원을 기록했다. 개별 기업으로는 LG디스플레이가 1조3110억원으로 상위권에, LG에너지솔루션은 7790억원으로 20위권에 포함됐다. 같은해 신한금융그룹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그룹 익스포저는 3조2565억원이며, 개별 기업은 LG디스플레이(1조5524억원)가 주요 차주로 집계됐다.
LG그룹은 올해 들어 숨 돌릴 틈 없이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연초부터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LG유플러스, LG헬로비전 등이 잇달아 회사채를 발행하며 주요 그룹사 중 가장 활발한 조달 행보를 보였다. 이어 2월에는 LG CNS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
5월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담보로 1조3945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고, 이달에는 2조원 규모의 PRS를 진행했다. 자산 매각도 병행됐다. 6월에는 첨단소재사업본부 내 수처리 필터 사업을 1조4000억원에, 8월에는 생명과학사업본부 내 에스테틱 사업을 2000억원에 매각했다. 14일에는 LG전자 인도법인이 현지 증시에 상장해 약 1조8000억원을 현금화했다.
물론 LG그룹이 SK그룹 수준의 차입 확대 국면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룹이 전방위 자금 조달에 나서는 배경에는 선제적 재무 리스크 방어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LG화학은 석유화학·첨단소재 사업 부진이 이어지고, LG에너지솔루션은 대규모 신사업 투자로 자금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되고 있다. LG디플을 비롯해 LG전자, LG유플러스 등도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등 그룹 전반이 인력 효율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SK그룹은 과거 공격적 조달로 신용공여 한도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고강도 리밸런싱(사업 재편)에 착수해 현재까지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재무 부담이 누적되던 지난해 말 롯데케미칼이 회사채 재무약정 위반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그룹의 대응과 금융권 지원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이후 롯데건설은 은행권 고금리 대출로 유동성을 확보했고, 롯데케미칼은 메리츠증권 등과 PRS 계약을 체결하며 방어에 나섰다. 여전히 롯데케미칼의 실적 회복이 그룹 재무 안정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K가 한동안 시장 조달을 주도하다 재무 부담이 커지자 자산 매각과 유동화로 전환했지만 아직 갚은 돈은 적어 대부분의 금융사가 한도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LG는 SK 수준은 아니지만 조달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금융권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특히 은행계 증권사들은 활발한 조달 수요를 반기면서도 정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환사채(EB) 등 파생상품을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이에 대응해 채권형 PRS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국회가 최근 증권사에 PRS 현황 제출을 요구하는 등 자사주 소각 ‘우회로’ 논란도 떠오르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LG그룹 정도면 한도가 가깝다고 딜을 진행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PRS를 많이 이용하는데 그 규모가 작지는 않아서 그룹별 조절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며 “최근 PRS가 자사주 소각 회피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보니, 기업들은 니즈가 많아도 금융사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거래를 하는 모양으로 비춰질까봐 걱정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