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호도가야 자회사 에스에프씨 IPO 시동…'WCP 흑역사' 벗어날 수 있을까
입력 2025.10.29 07:00
    호도가야 지분 56%·삼성디스플레이 34% 합작사
    日상장사 모회사·韓 자회사 이례적 지배구조
    신주모집 위주로 상장할 듯…日상장사 지배력 그대로
    1조원 이상 밸류에 증권사 관심…"중복상장 논란 적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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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디스플레이와 일본 호도가야화학(Hodogaya Chemical Co., Ltd.) 이 합작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업체 에스에프씨(SFC)가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모회사가 일본 증시에 상장된 합작사라는 점에서 3년 전 상장한 더블유씨피(WCP)와 비슷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2022년 상장한 WCP의 경우 상장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일본 모회사 주가가 급등했다가, 수요예측 실패로 인해 급락했던 바 있다. WCP 자체도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투자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SFC는 이 같은 '흑역사'를 피해갈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인다.

      SFC는 지난 12일 대표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 공동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을 선정했다. 입찰 과정에는 국내 주요 증권사 대부분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제안서에 제시된 예상 기업가치는 모두 1조 원 이상으로 전해졌다. 대형딜이 자취를 감춘 시장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조 단위 딜이라는 점이 증권사들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SFC는 글로벌 OLED 패널 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에 청색 발광재의 핵심 소재인 호스트(Host)와 도판트(Dopant)를 공급한다. 두 소재는 OLED의 화질, 전력 효율, 수명 등을 결정짓는 핵심 물질로 꼽힌다. 회사는 김용관 대표가 설립한 썬화인켐을 모태로 2006년 호도가야화학이 56.36%, 삼성디스플레이가 33.88%를 투자하면서 합작사(JV) 형태로 재편됐다. 

      호도가야화학은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일본 화학소재 기업으로, 염료·합성수지·발광재 등 다수의 정밀소재를 생산한다. 이번 상장을 통해 구주매출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호도가야화학이 과반(56%)의 지분을 유지해 지배구조 안정성은 유지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모회사가 일본에 상장돼 있어, 이번 IPO는 국내에서 흔히 논란이 되는 '중복상장' 이슈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시장에선 일본 상장 모회사가 한국 자회사를 상장하는 케이스는 드물지만, 한국거래소 입장에선 자회사 상장으로 인한 모회사 주주 보호를 할 필요가 없어 무난한 상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사는 "SFC 상장은 대부분 신주 모집을 중심으로 할 예정으로, 구주 매출을 한다 해도 호도가야화학의 지배력은 유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FC 지분구조는 과거 일본 상장사 더블유스코프(W-Scope) 와 한국 자회사 WCP의 상장 사례와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블유스코프는 2022년 9월 한국 자회사 WCP(2차전지 분리막 제조)의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며 46.0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장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증시에서 더블유스코프 주가는 단기간 20% 이상 상승했다. 국내 투자자들도 '모회사 지분가치 리레이팅'을 기대하며 순매수에 나섰다.

      하지만 WCP의 수요예측 결과가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공모가는 희망밴드(8만~10만 원)보다 낮은 6만 원으로 확정됐다. 경쟁률은 33대1 수준에 그쳤고, 공모금액은 7000억 원대에서 4000억 원대로 축소됐다. 기대감이 꺼지면서 더블유스코프 주가도 급락했다. 

      IPO 기대가 모회사 주가에 선반영됐다가, 밸류 현실화 이후 빠지는 구조였단 설명이다. 공모 규모를 줄이며 WCP는 투자자 친화적 구조를 내세워 구주매출을 전면 철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WCP는 상장 직후 공모가 대비 20%가량 하락한 상황에서 첫날 거래를 마무리해야 했다. 이차전지 붐을 타고 2023년 7월 9만원 부근까지 주가가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급락을 거듭하며 현재는 고점 대비 90%가량 하락한 상황이다.

      호도가야화학 역시 지난 7월말 SFC가 상장을 공식화한 이후 주가가 25%가량 올라있는 상황이다. SFC의 수요예측 흥행 여부가 모회사 주가에도 중요한 변수가 된 셈이다. 물론 OLED 소재 산업은 이차전지보다 사이클 변동성이 작고,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서 시장에선 WCP처럼 단기 기대감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흐름은 적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SFC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1581억 원, 영업이익은 295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8.8%, 30%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18.7% 수준이다. 업계에선 이번 상장을 통해 SFC가 독자적 자금조달 능력을 확보하고, 삼성디스플레이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오랜만의 조단위 딜로 증권사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라며 "모회사가 해외에 상장한 기업이기에, 국내 상장 자체는 중복상장 논란을 비켜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