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마 경영권 분쟁, 금융사 ‘유언대용신탁’ 마케팅 호재로…로펌까지 가세
입력 2025.10.29 07:00
    유언대용신탁, 유언장보다 조건 변경 등 자유로워
    금융사들 승계 분쟁 차단 효과 강조
    자산관리, ‘투자에서 방어로’ 패러다임 전환하며
    로펌들도 자산관리센터 강화 나서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콜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금융권의 ‘유언대용신탁’ 마케팅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이번 사례를 두고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했다면 법정 공방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탁상품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로펌들도 자산관리센터를 확대하며 상속·증여·세무 이슈를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자산관리가 투자 수익을 노리던 단계에서 ‘재산을 지키는 전략’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9부에선 콜마그룹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아들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 반환 청구 소송의 첫 변론이 열렸다. 윤 회장 측은 “피고가 승계 계획을 유지할 의무를 명백히 위반했다”며, 아들에게 지분을 증여할 당시 “딸인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를 경영에서 배제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 부회장 측은 “실적 부진 자회사에 대한 이사 교체는 대표이사로서 정당한 직무행위이며, 경영권자로서 고유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맞섰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가족 간 다툼을 넘어, 가업승계 과정에서의 법적 리스크 관리 문제로 금융권과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했다면 소송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생전에 금융기관(수탁자)과 계약을 맺고 재산을 맡긴 뒤, 사망 후 지정된 수익자에게 이를 이전하는 구조다. 유언장과 달리 공증 절차가 필요 없고, 생전에도 자유롭게 조건 변경이 가능해 상속 분쟁을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장점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유언대용신탁은 아버지의 의사가 바뀌더라도 계약 조건을 손쉽게 수정할 수 있다”며 “자녀 입장에서도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이 경영권 분쟁의 억제 장치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유언대용신탁은 2010년 하나은행이 금융권 최초로 도입한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2021년 1조3400억원, 2022년 2조500억원, 2023년 3조1100억원, 2024년에는 3조5150억원으로 매년 늘었다. 올해는 4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한국토지신탁이 ‘미리미리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하며 시장 진입에 나섰다. 5억원 이상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가입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시장 성장세에 발맞춰 로펌들도 잇따라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화우는 2020년 하나은행과 유언대용신탁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최근 하나은행 출신 신탁 전문가를 영입하며 협력 범위를 넓혔다.

      세종은 올해 초 권양희 전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영입해 상속·증여팀 송무를 강화했고, 지평은 가업승계 전문 변호사인 임채웅 변호사를 새로 영입했다. 김앤장, 광장, 율촌 등 다른 대형 로펌들도 가업승계 비지니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언대용신탁을 둘러싼 분쟁은 세법·민법·상속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경험이 풍부한 로펌일수록 시장 경쟁력이 커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자산관리 시장의 패러다임이 명확히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수익률 높은 투자상품 소개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은 법률 리스크·세금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어적 자산관리’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특히 자산가들이 PB센터보다 더 높은 법률·세무 이해도를 갖추게 되면서, 금융기관이 로펌 전문가와 손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자산관리는 돈을 불리는 게 아니라, 지키는 과정이 됐다”며 “형사 이슈로 번질 만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