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스타트업에도 자금 유입 지속되는 모습
스타트업 기업가치 두고는 시장 평가 엇갈려
모험자본 확대 기조에 밸류 둔 논란은 지속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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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확대 수혜로 주가가 급등하자, 전방 공급망 아래에 있는 협력 업체에도 자금이 몰리는 형국이다. 시장에선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의 주가가 추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의 몸값도 뛰고 있는데, 기업 밸류에 대한 시장 평가가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3개월 동안 저점 대비 48% 올랐고, SK하이닉스는 무려 123% 뛰어올랐다. 29일 기준으로 삼성전자, 삼성전자우,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1000조원을 넘어섰다. 반도체주 랠리와 함께 밸류체인 전반도 강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한미반도체 주가는 69% 상승했고, 팸텍(47%), 심텍(193%), 하나마이크론(148%), 리노공업(31%) 등 주요 소부장 종목들도 일제히 뛰었다.
이런 추세는 스타트업계에도 옮겨 붙고 있다. 투자 유치를 추진하는 기업들의 몸값이 함께 높아지는 양상이다.
반도체 생태계 내, 특히 팹리스를 담당하는 업체들에는 자금 유입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금을 돌려 기업들에 경험치를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애초 벤처 투자의 취지 자체가 모험 자본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산업 성장 사이클이 확대되는 만큼, 스타트업이 차지할 수 있는 시장 파이 역시 커질 수 있다. 이는 곧 관련 기업들의 몸값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내년에도 모험자본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벤처투자 업계 전반에 자금 유입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정책금융기관과 연기금·공제회가 공격적으로 자금을 집행하면서 이미 펀드를 마감한 하우스들도 후속 자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AI, 반도체 분야는 정부가 전략 산업으로 점찍은 만큼 벤처투자업계에서 관련 기업들로의 자금 쏠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단기간에 높아진 몸값에 고개를 갸웃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모빌린트는 최근 약 500억원 규모의 프리IPO를 추진 중이다. 회사는 기업가치(밸류)를 4000억원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빌린트는 2021년 시리즈 A 투자에서 90억 원, 2024년 1월 시리즈 B 투자에서 200억원을 유치했다. 매출액은 2022년 7억2000만원, 2023년 4억4000만원이다. 영업손실은 각각 69억9000만원, 72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매출 50억원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가치는 단기간에 크게 뛰었다. 불과 1년 만에 기업가치가 몇 배나 뛰었단 것이다. 실적이나 재무적 지표의 뚜렷한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밸류가 빠르게 치솟자, 시장에서는 투자 판단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매출이나 이익에서 근본적 변화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몸값이 크게 올랐다"며 "반도체 대형주 랠리와 리벨리온·퓨리오사AI가 유니콘 반열에 오른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간 영향이 큰데, 밸류에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 역시 "IPO 시점에 1조원대 밸류를 원한다고 가정해도, 프리IPO 단계에서 이미 4000억원을 불러버리면 리스크 대비 수익률이 다소 맞지 않는다"며 "VC 입장에서는 수년간 리스크를 지고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조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AI 인프라 투자 정책 기조와 맞물리며 전략적 투자자(SI)와 기관 자금이 유입된 결과다.
밸류를 높여 잡는 현상은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뿐 아닌, 소부장 업체들까지도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하단에서 투자 유치를 받는 일부 소부장 기업들도 기업가치를 높여 자금 유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VC업계 관계자는 "최근 거래되는 딜 가운데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곳들이 적지 않다"며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정부 정책 기조까지 맞물리다 보니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밸류가 맞지 않아 투자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누군가는 이 가격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거래가 이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방 산업의 성장세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지만, 대형사들조차 산업 사이클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이익 전망치 차이가 커지고 있다. 그 하단에 위치한 기업들일수록 이러한 간극은 더 뚜렷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고평가 논란과 여전히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는 시각이 공존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