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 당시 규제가 아직도'...합성ETF, 암묵적 자제령에 업계 '불만'
입력 2025.10.31 07:00
    ETF 시장 270조 '전성기'에도 올해 합성ETF는 '2개'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심사 강화세…"합성ETF 지양" 분위기 확산
    "테마 쏠림·카피캣 상품 급증 이유…혁신 막는 과잉 보호"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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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270조원을 목전에 두며 사상 최대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합성ETF는 신규 출시가 급감하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당국 심사가 점차 보수적으로 전환되면서, 혁신적 구조의 상품 기획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업계 불만이 커지고 있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 순자산총액은 269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약 171조원) 대비 57%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와 '코스피 4000' 기대감 속에 개인투자자 자금이 대거 유입되며 ETF 시장의 전성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합성ETF 신규 상장은 정반대 흐름을 보인다. 2023년 21개에서 지난해 14개로 30% 이상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단 2개에 그쳤다. 2013년 합성ETF 도입 이후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시장 규모가 급팽창하는 와중에 ETF 상품의 한 축이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합성ETF는 실물 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장외파생상품(스와프)을 통해 지수 수익률을 복제하는 구조다. 직접 편입이 어렵거나 접근성이 낮은 해외 지수·특수 자산에 투자할 수 있어, 그간 국내 ETF 시장의 상품 다양성과 저변 확대에 기여해왔다.

      변곡점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당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러시아 지수 산출을 중단하면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러시아MSCI(합성)' 등 일부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했고, 스와프 거래 상대방(증권사)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국이 심사 단계에서 합성ETF의 구조적 리스크 점검을 대폭 강화했고, 그 결과 승인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해당 손실 사고 이후 ETF 관련 법과 규정은 그대로인데, 심사 과정에서 '합성ETF는 가급적 자제하라'는 신호를 여러 차례 느꼈다"며 "구조 리스크를 이유로 반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합성ETF 자체를 기획조차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용사 운용역은 "사고 위험성이 드러난 뒤 합성ETF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신규 기획을 아예 접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같은 기류 속에 운용사들은 테마형 ETF로 몰리고 있다. 주요 상품 설계 방식인 합성형이 막히자, AI·반도체·방산 등 국내 상장 종목 위주의 유사 테마 상품이 빠르게 늘었다. 대형·중소형 운용사 간 종목 구성과 비중이 거의 동일한 '카피캣'(copycat) 현상이 확산된 것이다.

      한 중견 운용사 전략 담당 임원은 "차별화가 사라지고 수수료·마케팅 경쟁만 남았다"며 "ETF 전성기라지만 운용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는 오히려 좁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 보호가 과도하게 적용되면서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이 축소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러시아 사태는 전쟁이라는 특수 변수였는데, 이를 전체 구조 리스크로 일반화해 봉쇄하면 혁신 유인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형평성 문제도 남는다. 레버리지·인버스 ETF 역시 파생상품 기반이지만 유사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규제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합성'이라는 이름만으로 동일한 파생 구조 ETF의 문을 닫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별도의 제한이나 내부 지침은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합성ETF 상장 관련 제한이나 방침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내 운용사들의 글로벌 자산 운용 역량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합성 구조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거래소는 스와프 공시 강화, 담보 기준 정비 등 위험관리 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합성ETF 관련 제도 개편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구체적 개선책 마련까지는 합성ETF 한파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는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자 보호 장치 강화는 불가피하지만, 과도한 규제 기조는 상품 다양성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ETF의 본래 취지는 개인투자자들의 자산 배분을 돕는 혁신 금융상품"이라며 "위험 최소화라는 명분 아래 혁신이 차단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ETF 전성기일수록 합성ETF가 다시 시장에 복귀해 상품 혁신과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며 "명확한 기준과 심사체계를 정비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