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등 떠밀려 홈플러스 사면 뒷감당은 누가, 어떻게?
입력 2025.11.03 07:00
    Invest Column
    농협 구원투수 분위기 띄는 정치권
    하나로마트도 사업도 접을 마당에 홈플러스 인수?
    정치권 압박에 인수해도 '면피'는 불가
    두고두고 경영실패 책임소재 공방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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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홈플러스 사태는 대주주의 경영 실패로 치부해버리면 간단하다. 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자로 대상을 확장하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직접 고용인원만 약 2만명, 2800여곳의 협력업체 근로자를 포함하면 약 10만명의 일자리가 홈플러스의 존폐에 달려있다. 

      사실 홈플러스는 청산가치가 월등히 높아 경영을 계속할 이유가 적다. 또 대형마트의 업황도 밝지 않다. 그렇기에 시장 논리를 따른다면 홈플러스를 인수해 경영할 의지를 갖는 원매자가 나타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선 농협을 홈플러스 인수 후보로 띄우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책임론과 더불어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모습과는 별개로 말이다. 각 상임위 국정감사에서 농협의 홈플러스 인수와 관련한 질의가 쏟아졌고 여야를 막론하고 농협에 결단 촉구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스토킹호스 방식의 경영권 매각이 무산되고, 마지막 승부수로 띄운 공개 매각 역시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 어느 정도 결론을 예상하고 있을 MBK 측은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을 내심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김광일 부회장 역시 의원들의 질의에 농협과의 시너지 효과를 인정했지만 실제 협상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애초부터 농협은 홈플러스에 관심이 없었다.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농협유통(하나로마트)의 경영도 버거운 상황이다. 거기에 우리나라 3대 대형마트, 그것도 자금난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홈플러스를 인수한다는 건 무리수에 가까웠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역시 국감장에서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은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의원들이 거듭 검토를 요청하자 결국 "연구해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홈플러스는 한때 전세계 유수의 운용사들이 탐을 낼 정도로 유망했지만 10년 만에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CJ·GS·쿠팡·네이버·다이소 등 우리나라 대표 유통 기업들은 물론, 알리익스프레스를 비롯한 해외 기업들 그리고 자금력이 충분한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홈플러스 인수에 대한 손익계산을 이미 마친 상태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속해서 연간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홈플러스를 턴어라운드 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MBK 같이 부동산을 활용해 유동화하거나, 점포를 줄여 수익 구조를 바꾸거나, 임직원을 재배치해 비용의 효율화를 꾀하는 등 '구조조정'이란 단어를 빼놓곤 홈플러스의 재기를 담보하기 어렵다.

      대형마트 사업은 의무휴업과 신규출점 제한 등 각종 규제의 중심에 있다. 소비자로서 또는 피고용자로서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산업인 탓에 노동 분야 이슈가 늘 상존한다.

      실제로 홈플러스를 통한 사업 확장의 사실상 어렵고, 부동산을 통한 자금 회수 전략이 아니고서야 앞으로도 막대한 자금이 투입이 불가피하단 것을 원매자들은 잘 알고 있다. MBK가 주식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운영 수익 증여해 원매자들의 초기 비용을 아무리 낮춰준들, 향후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단 계산이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홈플러스의 매각 초기 단계부터 원매자가 '굳이' 홈플러스 인수에 나선다면 그 배경은 '부동산 가치' 하나로 귀결된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홈플러스 부동산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활용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기회를 옅볼 수 있다는 해석이 실제로 존재했다. 물론 홈플러스 사태를 정치권과 노동계 등에서 눈여겨 보기 시작하며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단 점, 원매자들 또한 이런 부담을 질만큼 급한 곳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이 구원투수로 등장한다면? 홈플러스의 손바뀜은 경제성보단 정치 논리가 크게 작용한 거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농협 자체적으론 하나로마트조차 실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 '농업과 지역경제를 위한 상생금융'을 앞세운 농협은 하나로마트에서 수입산 바나나와 오렌지조차 팔지 못한다. 그런 농협이 홈플러스를 통해 수익을 내겠단 전략을 내세울 수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보인다.

      강호동 회장은 심지어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하나로마트의 경우 필요하면 폐점을 검토하는 등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리겠다"며 적자를 내는 유통부문의 구조조정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나로마트의 실적 부진이 농협경제지주로 이어지고 넓게는 농협중앙회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로마트보다 적자폭이 훨씬 큰 홈플러스를 인수하기 위해선 명확한 '배경'과 뚜렷한 '명분'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압박에 못이겼다고 해서, 경영 실패에 대한 결과물은 '면피'가 되진 않는다. 두고두고 '누가? 도대체 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질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한다 하더라도 운신의 폭은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국감에 불려나가는 피감기관이자,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농협의 특성상 홈플러스의 자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점포 하나 매각하는 것도 지자체와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야하고,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의 농협 내부 사정은 녹록지 않다. 강 회장 개인적으론 억대 금품 수수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NH투자증권·NH농협생명 등 계열사 비위 행위들이 최근들어 속속 수면 위로 등장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카드가 필요하지만, 홈플러스 구원투수를 자처해 나갈 상황은 아닌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