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기업과 GPU 26만장 규모 인프라 협력계획 발표
GPU=국력이나…엔비디아 생태계 강화·포섭 전략 평도
삼성·현대차 포함 대기업 전반 성장 스토리 강해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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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3인이 치킨집에서 만났다. 그래픽카드와 삼성카드, 현대카드 중 무엇으로 치맥 값을 긁느냐는 등 우스개까지 오르내렸는데 실제로 1차는 이재용 회장이, 2차는 정의선 회장이 계산한 것으로 알려진다. 3인이 각기 대표하는 기업집단 시가총액만 차례로 7000조원(엔비디아), 1000조원(삼성그룹), 180조원(현대차그룹) 규모다. 기백만원 술값이야 사실 사소한 문제다. 거물 기업가 3인이 만난 자리인 만큼 누가 수완을 발휘했는지가 중요하다. 일단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회동 다음날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혁신 인프라 협력 계획을 내놨다. 최대 26만장 규모의 엔비디아 가속기(GPU)를 한국 정부, 기업에 제공하는 게 주요 골자다. 일차원적으로 보자면 성공적인 방한 세일즈를 펼쳤다. 한발짝 들어가면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GPU 26만장은 각각 ▲한국 정부(5만장) ▲삼성그룹(5만장) ▲SK그룹(5만장) ▲현대차그룹(5만장) ▲네이버클라우드(블렉웰 GPU 6만장)에 배분된다. 개별 기업이나 정부가 GPU 5만~6만장을 확보한다는 건 '슈퍼 두뇌'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엔비디아 덕에 각자가 AI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을 걸칠 수 있는 입장권을 쥐게 됐다는 얘기다. GPU 26만장은 지불 여력이 있어도 쉽게 구하기 힘든 전략 자산이다. 국력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AI 연산력을 확보한 셈이다. 그간 정부의 소버린 AI 전략을 두고도 관료들이 GPU를 제때 확보할 수는 있을까 회의감이 적지 않았는데, 단숨에 동아시아 AI 허브 국가 이미지를 굳힐 수 있게 됐다. 확보한 GPU를 기반으로 전후방 산업 육성 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연산력(Compute Power)을 국력의 한 단위로 보면 된다. 확보한 GPU 수량에 따라 패권이 바뀔 수 있으니 미국이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도 강하게 하는 것"이라며 "과거엔 에너지 확보 문제로 산유국 중심 패권 질서가 작동했다면 지금은 오일이 아니라 반도체가 중요해진 시대"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가 뭐하러 한국에 이런 선물을 안겼을까. 그간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10만장 규모 GPU 공급 협력에 나선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번 방한 행보는 다소 이례적이란 평이다. 최대 판매처 중 하나인 중국이나 TSMC가 있는 핵심 공급망 대만을 찾았을 때도 이런 식의 협력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우선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기업과의 협력 성과가 갈수록 중요해지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전방 AI 투자는 학습에서 추론 단계로 본격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학습이 한창일 때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응에서 오래 헤맸지만, 추론 단계에서는 D램이나 낸드 등 전통적인 범용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진다. 실제로 범용 메모리, 특히 낸드의 시장 가격이나 구매계약 자체가 스페셜티(특화) 제품처럼 바뀌고 있다. 엔비디아의 중장기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자면 최대 생산능력을 보유한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음으로는 '피지컬 AI' 시대가 예고된다. AI가 학습, 추론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나면 자율주행 차량이나 로보틱스 같은 물체에 실어 파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두뇌 설계에 특화한 엔비디아 입장에선 현대차와 같은 제조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시장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기업을 제외하면 완성차·로보틱스 협력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꼽힌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보유한 글로벌 양산 능력, 차량 주행 데이터나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있어야 엔비디아가 반(反) 테슬라 진영에서 피지컬 AI 플랫폼을 펼치는 데 유리하다"라며 "테슬라 외에는 AI 훈련-추론-HW 탑재까지 풀스택 체계를 구축한 기업이 없기 때문에 협력이 굳어지면 시너지가 상당할 것 같다. 스마트폰 시대의 안드로이드-갤럭시 관계랑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가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끌어낼 실익 역시 무궁무진할 전망이다. 당장 확보한 GPU를 사업장에 활용하는 걸 넘어 그룹사 차원에서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써나갈 수 있게 된 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