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중복상장 논란 '모회사'에 자사주 소각 요구…기업들 '부담'
입력 2025.11.05 07:00
    정치권 자사주 의무소각 법제화에 속도 내자
    거래소, 중복상장 논란 기업에 자사주 집중 질의
    합의점 찾지만…기업들 "당장 소각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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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특히 중복상장 이슈가 있는 기업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거래소가 기존 상장 모회사 주주 보호의 일환으로 모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회사 상장 추진 과정에서 모회사의 자사주 처리 방침이 일종의 '질적 평가' 기준이 된 셈이다. 기업들은 취지는 이해한다지만,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3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11월 열릴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본격 논의할 전망이다. 상법개정 등의 영향으로 코스피가 4000선을 넘어서자, 남은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에 대해서도 빠른 법제화가 필요하단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27일 "자사주 관련 문제는 특위 중심으로 논의 중이고 투자자 의견도 듣고 있다"며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취득 후 소각을 전제로 해 제도를 보완 중이다"고 밝혔다. 

      자사주 처리 방안 중 하나로 활발히 활용되어 온 상장사들의 EB발행도 서서히 막히는 분위기다. 금감원에서 태광산업, 광동제약의 EB발행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자사주를 기반으로 한 PRS 거래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선 기보유 자사주 또한 소각 방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단 분석이 많다. 

      이런 분위기는 중복상장 이슈가 있는 기업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거래소는 모회사가 자사주를 보유한 경우, 자회사 상장 전에 이를 소각할 것을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법제화가 코앞까지 온 상황이라 중복상장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자사주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일단 모회사가 자사주를 가지고 있는 경우 소각을 먼저 권유드리고, 이후에는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하실 계획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의한다"고 했다.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전락해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불가피하단 지적이 있었다. 이에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쪼개져 있거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언급되는 회사의 경우 기보유 자사주 처리 방침에 시선이 쏠렸다. 

      거래소는 상장 심사 과정에서 자사주 처리 계획을 확인한 뒤 기업의 소각 의지를 살피고,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다면 추가 질의도 진행한다. 특히 자사주가 향후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더 세밀한 답변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사전협의 진행 단계에서부터 논의하며, 예비심사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 기업으로부터 소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전달 받는다. 

      중복상장 우려가 있었던 티엠씨는 최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 티엠씨는 코스닥 상장사 케이피에프가 68.37% 지분을 보유해 중복상장 논란이 제기됐다. 티엠씨의 모회사 케이피에프는 주주환원책 중 하나로 보유 자사주의 절반을 소각하고, 나머지는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기로 했다. 거래소와의 협의를 통해 자사주 처리 방침을 논의한 결과다. 

      거래소와 사전협의를 진행 중인 LS에식스솔루션즈의 차상위 지배주주인  ㈜LS는 자사주 소각에 고삐를 죄고 있다. ㈜LS는 지난 8월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고 현재 13.7% 정도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내년 1월에 자사주를 50만주 추가 소각, 자사주 보유 비중을 10%대로 떨어트린단 방침이다. 거래소는 더 많은 물량을 소각하길 원했으나, 회사 사정을 감안해 이 정도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사주 처리 계획에 대한 질의와 소각에 대한 요구는 코스닥 상장 심사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서 자사주는 주주환원 수단으로 논의된다. 실질심사에 들어가면 거래가 정지되는데, 이는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 회사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일부 소각해 주주환원책을 마련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들어갔던 디아이동일은 논의 끝에 보유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처리 문제를 두고 기업들이 곤란해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 상장 준비 기업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이 아직 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전량 소각은 회사 입장에서 큰 부담"이라며 "유예기간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는데, 단일 기업 상장을 위해 모회사나 지주사가 대규모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기재위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를 사용하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고 이걸 개선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을 논의하는 것인데 기업들이 거래소의 요구를 난처해하는 것은 주주친화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자사주 처리 방침은 아직 법제화된 것은 아니기 떄문에 규정이 바뀐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