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초기 과열 데자뷔…최전방 AI업체서 탈락자 나오면?
투자계획만 흥청망청…반도체 업계는 비교적 보수적 전략
AI 거품론과 실수요 논쟁, 당분간 냉온탕 반복할 거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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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대감이 끌어올린 증시가 단숨에 내려앉고 있다. 하반기 재부상한 AI 시장 장밋빛 전망이 재차 거품론에 가로막힌 형국이다. AI에 필요한 생태계 조성 작업이 과거 부동산·전기차 시장 과열과 겹쳐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분간 쏟아지는 투자 계획들을 뒷받침할 만한 수치가 확인되느냐에 따라 낙관과 비관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반복될 전망이다.
5일 코스피는 급락하며 3900선을 내주기도 했다. 4200을 돌파한 지 2거래일 만이다. 각각 11만원, 62만원을 돌파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이틀 내리 내리막을 탄 영향이 커 보인다. 전방 AI 투자 계획에 대한 여러 의구심들이 양사 주가를 시작으로 국내 주식시장 전체를 끌어내리는 모양새다. AI 투자에 거품이 꼈다면 반도체 공급을 담당할 양사 전망에도 조정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식이다.
현재 시장이 거품을 걱정하는 영역은 주로 AI 데이터센터(DC) 붐에 집중돼 있다. 내년 DC나 전력망 등 AI 인프라 구축에만 1000조원 안팎 투자가 예정돼 있는데, 이런 속도의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프라 투자는 ▲실수요 발생 이전에 성장세에 맞춰 ▲경쟁사보다 빨리 집행해야 기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데 ▲총대를 멘 AI 기업들은 여전히 적자 상태다.
자체 현금흐름으로 감당 못할 투자 계획들을 쏟아낸 만큼 거품에 대한 걱정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올 하반기 들어 AI 산업에서 자본시장 역할이 부각되는 것도 이런저런 투자 계획에 대한 견제로 작용하고 있다. 미래 현금을 당겨쓰는 과정에서 투자은행(IB)이나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중개 수요가 커진 만큼 AI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사업성 평가나 부실화 검증도 강화하는 식이다.
한 IB 관계자는 "오픈AI의 올해 순손실이 5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내년부터 매해 AI 투자에 들어갈 고정비만 50조원 이상이니 1조달러 기업공개(IPO)가 필요한 것"이라며 "다른 AI 기업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기관 자금을 끌어와야 지속 가능한 단계까지 왔으니 과열이냐 아니냐에 대한 검증이나 견제가 강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거품이 크게 일었다 꺼진 사례들과 겹쳐 보인다는 평도 나온다. 전방 AI 투자 상당수는 임대 목적의 DC를 비롯한 인프라 확충으로 채워져 있다. 부동산 개발하듯 AI 기업들이 입주할 것이라 내다보고 각지에 인프라를 깔아두는 것이다. 오라클처럼 오픈Ai라는 대형 고객사를 쥐고 가는 사례도 있지만 코어위브처럼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인프라부터 짓고 보는 네오클라우드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이 자체를 거품으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초입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2020년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 성공을 확인한 완성차 업체들이 줄줄이 수백만대 판매 목표를 잡고 ▲셀 업체에 수백GWh 물량을 발주하면서 ▲소재사까지 덩달아 글로벌 생산능력을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는 수년째 공급과잉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전방 오픈AI나 xAI, 앤스로픽, 구글 등 업체들 중 탈락자가 나오면 뒷단 인프라 공급을 준비하던 뒷단 밸류체인이 대거 타격을 입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올 상황이다.
다른 게 있다면 현재 AI 시장은 '투자 계획'만 과열된 상태라는 점이다. 실제로 오픈AI가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반도체 공급 협력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진 보수적으로 해당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한 외국계 IB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칩 줄 사람은 준비도 안 됐는데 AI DC 투자비만 왕창 끌어올린 상황에 가깝다"라며 "현재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공급사들이 설비투자(CAPEX)를 끌어올리고는 있지만, 스펙이나 가격, 납기일 등 확정된 물량을 중심으로 집행할 수밖에 없다. 대만 TSMC도 다르지 않은 입장으로 확인된다"라고 전했다.
AI 투자 계획이 대거 뿌려졌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풀이된다. 오픈AI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AI향 반도체에서만 월 웨이퍼 생산량 기준 90만장 수준의 물량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능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규모다. 지불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고객사와 의향서(LOI) 수준 협의를 마쳤을 뿐, 당장 CAPEX에는 반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달리 보자면 반도체 공급사들이 AI 거품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해당 투자 계획 달성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역시 물리적으로 제약이 극심하기도 하다. 개별 AI DC마다 독립적인 그리드를 구축하는 규모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데, 이 역시 업계 전체의 생산능력을 뛰어넘는다. 전방 AI 투자 계획들이 지속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현실적 제약 역시 만만치 않은 셈이다.
현재는 거품에 대한 걱정이 크게 부상했지만, 수개월 내 또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불거지는 우려가 반년 전에도, 작년에도 등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 계획이 부풀려져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긴 하나 AI 업체들의 실수요 데이터가 나오면 언제든지 판단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AI에 대한 전망이 계속해서 냉온탕을 오갈 것이란 전망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과소투자보다 과다투자가 낫다"라고 한 게 작년 투자자 설명회(IR)였다"라며 "CAPEX 증가가 급한 거 아니냐, 하는 시각이 불거지다가 또 실수요 데이터가 이를 정당화하는 식이 매번 반복되는 양상이다. 투자 계획에 부풀려진 점이 있어도 얼마 후에 또 뒤집힐지 모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