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대신 PE 본사라도"…지방선거 앞둔 정치권의 'PE 활용법'
입력 2025.11.06 07:00
    취재노트
    정부, HMM 본사 및 해수부 부서 부산 이전 추진中
    부산금융센터, 운용사 유치용 세제 혜택 내걸었지만
    성장금융 첫 출자한 '부산펀드'는 저조한 경쟁률
    북극항로 펀드 등 정책형 투자도 실효성 논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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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반년 남짓한 시점, 정치권 내부에서는 이미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 여야는 조용히 판세를 점검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고 후보 추천과 공천 전략, 지지 기반 점검을 위한 내부 회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잠재 후보군을 살펴보고, 지역 조직과 관계자 동향을 파악하며 향후 전략을 조율하느라 분주하다. 

      그중에서도 부산은 내년 최대 정치적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북구청장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면서 여야 모두 북구를 포함한 핵심 지역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의 부산시장 출마 여부가 매일같이 화제가 되면서 판 전체를 흔들 핵심 변수로 떠오른 상태다.  

      정치권이 선거 준비에 몰두하는 가운데 경제·금융 분야에서도 상징적 성과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은근히 진행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정책금융 이전이 어려워지자 정치권이 꺼내 든 카드는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VC)이다. 민간금융을 압박해 '부산 금융허브'의 상징성을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해양수산부는 산은 이전 무산 직후 HMM 본사 및 해수부 비영업부서 일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이달 국정감사에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 로드맵을 연내 마련하겠다"며 "4~6개 산하기관의 이전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자리에서 "내년부터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실시하겠다"며 해운·물류 거점으로서 부산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언급도 했다. 

      해수부의 이전 검토는 산업은행 논의가 빠진 자리를 메우려는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실제로 전 장관은 지난 국무회의에서 "동남권투자은행 대신 동남권투자공사로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이후 이를 대통령실이 승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은행 설립이 BIS비율과 대손충당금 규제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자 공사 형태로 전환해 정책자금 운용 여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금융위 또한 "은행보다 공사가 유연하다"는 입장을 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부산시와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들은 이후 민간 금융 유치로 눈을 돌렸다. 올해 상반기부터 주요 PEF·VC를 대상으로 연달아 IR을 열었다. "산은은 어렵지만, 금융사 본사라도 부산에 둬야 한다"는 메시지가 사실상 공식 기조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내건 인센티브는 과감하다.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직원 10명 이상이 상주하는 사무소를 열면 3년간 법인세를 전액 면제하고, 시세보다 30% 낮은 임대료를 제공한다. 단 10명 미만일 경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자연히 중형 PEF나 VC 중심의 유치가 불가피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PE나 VC 본사 이전은 어렵더라도 상주 조직이 있는 사무소 유치는 가능하다는 판단"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한 PEF 대표는 "부산에 인력 10명을 상주시킨다는 건 사실상 본사를 옮기라는 얘기"라며 "사모펀드의 투자심의, 딜 소싱은 결국 서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무소만 두는 건 인건비 낭비에 가깝다"고 말했다. 

      다른 VC 관계자도 "법인세 감면이 매력적일 순 있지만 투자 네트워크와 엑시트 시장이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방 사무소는 상징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거들었다.

      정책금융 라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성장금융은 올해 하반기 '부산 미래산업 전환펀드'라는 출자사업을 신설했다. 출자 총액은 약 500억원 규모지만 경쟁률은 2대1로 최저 수준이었다. 

      참가를 검토했던 일부 운용사들은 "최소 750억원 이상의 펀드를 결성하고 절반 이상을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소재 중소기업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며 포기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 같은 'PE 활용론'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HMM 이전, 북극항로 시범투자, 해양금융허브 구축 등을 핵심 사업으로 묶어 추진 중이다. 부산형 해양펀드, 북극항로 펀드 등의 명칭이 등장했지만 관련 예산이나 운용 구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투자업계에서는 또 하나의 정책형 펀드로 그칠 것이라는 회의감이 우세하다.

      정치권의 움직임은 '산은 대체효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은이 내려가지 못하자 공사 설립과 민간 금융 유치로 대체 상징을 세우려는 시도다.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에 가깝다. 공사 설립, PE 사무소 유치, 정책펀드 출자라는 세 갈래의 시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선거운동이라는 목적 아래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한 발짝 떨어져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름만 바꾼 정책 공사와 지방 사무소, 소규모 출자펀드가 실제 금융 허브나 투자 확대를 이끌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향후 숫자와 명칭으로 치장할 정치적 성과는 서울 중심의 자본·네트워크 현실과는 여전히 괴리가 크다. 정치권이 선거용 상징을 쌓는 동안 실제 투자자들의 발걸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