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기금·공제회도 포트폴리오 점검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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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대형 금융사 수장들이 최근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에 대해 잇따라 경고음을 내고 있다. 미국에서 사모대출을 받은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르면서, 부실이 신용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자들도 이미 사모대출 상품에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한 만큼, 리스크 노출도를 면밀히 점검하며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최대 금융사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최근 자동차 대출업체 트라이컬러 홀딩스(Tricolor Holdings)의 파산과 관련해 “이런 일이 발생하면 내 안테나가 올라간다. 바퀴벌레 하나를 보면 아마도 더 많이 있을 것”이라며 시장 내 도미노 부실 가능성을 경고했다. JP모건은 트라이컬러 관련 투자에서 약 1억7000만달러(약 2400억원)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맞물려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 브랜즈 그룹(First Brands Group)의 파산도 사모대출 리스크 논쟁을 자극했다. 양 사의 부실은 단순한 개별 사례를 넘어, 사모대출 운용사들의 심사·구조 설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있다.
사모대출 시장의 급팽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 규제가 강화되면서 시작됐다. 은행들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 대출을 꺼리자, 자금 공백을 메운 것이 사모펀드와 운용사들이었다. 블랙록, 아폴로, 아레스 등 대형 운용사들이 잇따라 사모대출펀드를 내놓으며 시장은 빠르게 팽창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프레퀸(Preqin)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2010년 3000억달러 수준에서 2024년 2.1조달러(약 2900조원)로 7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 속도만큼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HPS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는 최근 통신 서비스 기업의 오너로부터 투자 사기를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는 운용사들이 비상장·비공시 기업과 복잡한 파생구조로 얽히는 사모대출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기금·공제회들은 사모대출펀드에 포트폴리오의 한 자릿수 후반까지 비중을 두고 있으며, 북미 지역 운용사 펀드에 상당히 출자한 상태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우리가 투자한 펀드 내 사모대출 비중과 개별 차주의 신용도를 점검한 결과, 아직 리스크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며 “다만 운용사별 대출 구조를 정밀하게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연기금 관계자는 “사모대출의 수익률은 높지만, 개별 대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내부적으로 운용사 검증 기준을 더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경고의 신호탄’으로 본다. 사모대출 시장은 은행권을 대체해온 주요 자금통로로 성장했지만, 실제로는 10년 남짓한 짧은 트랙레코드를 지닌 ‘검증되지 않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선진국 시장에서도 이미 포화 조짐이 나타나 해외 운용사들이 아시아, 특히 한국까지 세일즈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며 “과거 해외 부동산 오피스 투자가 그랬듯, 높은 수익률만 보고 접근하면 되레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