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어음 담당 인력 모십니다'...구인 전쟁 불붙은 증권가
입력 2025.11.07 07:00
    인가보다 사람이 먼저…증권가 '선제 확보전' 본격화
    신한·키움·메리츠·하나·삼성, IB 인력 강화 '총력전'
    인가 요건 강화 앞두고…"이번이 마지막 기회"
    인가 후도 문제…중소형사 인력 유출 우려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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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발행어음 인가를 둘러싸고 증권가의 경쟁이 '인력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단순히 인가를 받는 차원을 넘어, 운용·리스크 관리·내부통제 등 사업 전반을 책임질 인력을 얼마나 일찍 확보하느냐가 당국 심사와 향후 사업 성패를 가를 변수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금융당국은 이번 인가 심사에서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운용조직의 전문성을 중점 심사사항 중 하나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어음 자체가 상품보다는 사람이 먼저 준비돼야 하는 사업이다 보니, 증권가들은 사전에 조직과 인력을 갖추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기업금융심사부 경력직 채용을 실시하며, VC(벤처캐피탈)나 스타트업 투자 검토 유경험자를 우대 조건으로 명시했다. 해당 인력은 VC와 모험자본, IB딜(기업금융부문) 심사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데, 발행어음 인가 이후 모험자본 운용 역량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는 평가다. 9월 심사역 채용에 이어 10월에는 PM(프로젝트 매니저) 채용에도 나섰다.

      신한투자증권 뿐만 아니라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한 다른 하우스(키움증권·메리츠증권·삼성증권·하나증권)들도 IB 인력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키움증권 역시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한 후 시장에서 IB와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문 인력을 활발히 채용하고 있는 하우스로 평가받는다. 키움은 전통적으로 리테일과 브로커리지 중심의 하우스로 꼽히지만,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한 뒤 IB 인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관련 전담조직은 5~6명 수준으로 알려졌으나, 인가가 나면 운용·심사·리스크 등 기능별 인력 이동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키움은 인가 전 IB 구색을 맞춰두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라며 "인가 이후에는 내부 전담조직을 중심으로 인력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초부터 전통 IB 재건을 목표로 인력 영입에 적극 나서왔다. 기업금융 조직을 신설하고 커버리지 인력을 확대하는 등 발행어음 인가 신청과 궤를 같이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에 표면적으로는 딜 소싱·심사·운용 조직을 갖춘 상태로 파악된다. 다만 그동안 부동산 PF와 고금리 대출 위주의 사업 모델에 주력해왔던 탓에, 상대적으로 약한 트랙 레코드를 보완하는 것이 숙제라는 평가다.

      삼성증권과 하나증권도 내부적으로 전담 TF를 꾸리고 물밑에서 외부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나증권은 최근 IB기획실 경력직 채용에 나섰는데, 발행어음 인가를 염두에 둔 기획·백오피스 양 축의 인력 보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획 파트에서는 IB 전략 및 계획 수립, 신규 사업 검토, 제도·프로세스 개선 등을 담당하도록 돼 있어, 발행어음 인가 이후 자기자본운용(PI)·모험자본 투자 부문 확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어음 사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는 증권사들의 경우, 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로부터 담당 인력들이 이직 제안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식적으로 채용을 하는 것보다 물밑에서 이직 제안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발행어음 인가를 준비 중인 증권사들이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조직을 갖추기 위한 '모양새'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발행어음은 조달보다 운용이 더 중요한 사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자산군 대부분이 기업대출·벤처투자·비우량채권 등 모험자본 성격의 자산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인가 심사 시 단순한 자본규모보다는 이러한 자산을 심사·운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갖췄는지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인가 경쟁은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현재 증권사는 자기자본 대비 최대 200%까지 발행어음 조달이 가능한데, 금융당국이 내년부터 인가 요건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다 내부통제 및 리스크관리 체계에 대한 심사도 강화될 전망이다. 지금 시점에 인가를 확보해야 중장기적으로 자금 운용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사업 인가 이후 인력 이동이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업 개시 이후 운용자산이 빠르게 불어나면 기업금융, 심사, 리스크관리 등 전 부문에서 추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형사 중심으로 인력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중소형사 IB 인력들의 이탈도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발행어음은 상품보다 사람이 먼저 준비돼야 하는 사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며 "인가 전엔 사람을 모으는 경쟁이, 인가 후엔 사람을 지키는 경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