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대장주 'AI 반도체·방산' 차익실현…클라우드·전력 등 AI인프라에 유입
"환율 1450원 육박에 단기 조정 불가피…숨고르기 후 재유입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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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일부 업종에서는 선별적 매수세가 포착되고 있다. AI 반도체의 과열 국면에서 하드웨어를 덜어내는 대신 AI 인프라, 금융, 바이오 등 실적 기반 업종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모습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총 7조1835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31일 이후 4거래일 연속 이어진 매도세다. 이번 매도 규모는 지난달 유입된 외국인 자금(5조3447억원)을 단기간에 모두 되돌리고도 남는 수준이다.
외국인 순매도 상위에는 SK하이닉스(-3조3939억원), 삼성전자(-1조7575억원)가 이름을 올렸다. 두산에너빌리티(-3992억원), 네이버(-3378억원), 한화오션(-1786억원), HD현대일렉트릭(-1602억원) 등도 대규모 매도 대상이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상승을 주도했던 AI·조선·방산 중심의 '핵심 랠리 종목'이 일제히 정리되며 차익실현이 집중된 양상이다.
반면 외국인 순매수 상위에는 금융·AI 인프라 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지난 6일, 대표적 금융주인 하나금융지주(518억원)를 비롯해 LG이노텍(400억원), LG전자(390억원), 한국전력(268억원) 등이 매수 상위권에 올랐다. 특히 LG CNS는 5일 하루 동안 2873억원 순매수되며 이례적인 자금 유입을 기록했다.
그룹 전사적으로 AI데이터센터(AIDC) 투자 방침을 밝힌 SK그룹주도 수혜를 받고 있다. 외국인들의 대규모 순매도가 시작된 지난 5일 이후 7일 오전까지 SK스퀘어엔 262억, SK㈜ 165억, SK텔레콤 152억원의 외국인 순매수가 들어왔다. 특히 SK텔레콤의 경우 3분기 배당포기 선언 이후 배당주 펀드로 추정되는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갔는데, 이후 AIDC 테마 수요로 추정되는 외국인 및 기관 자금이 조금씩 유입되는 모양새다.
금융주는 연말 배당 매력과 이익 안정성이, 전력·IT서비스주는 AI·클라우드 확산에 따른 구조적 성장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LG CNS는 클라우드·AI 인프라 수요 증가에 따라 중장기 성장성이 강화되고, 외부 고객사(논캡티브) 매출 비중이 50%를 웃돌며 사업 다변화 여력이 크다는 평가다.
최승호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 확대에 따라 DBO(설계·구축·운영)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LG CNS는 클라우드 외에도 AI·로봇 등 차세대 영역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에서는 바이오 종목이 외국인 매수 상위권에 대거 포진했다. 파마리서치, 에이비엘바이오, 에스티팜, 휴젤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한·미 무역협상 타결로 의약품이 ‘최혜국 대우’를 받고, 제네릭(복제약)에 무관세가 적용된 점이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오 업종은 시장 관심이 낮았지만, 글로벌 기술이전 기대와 정책 지원이 맞물리며 반등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실적 회복이 가시화되면 외국인 자금이 더욱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바이오 외에도 반도체 장비·헬스케어 업종에 매수세가 확산됐다. 고영, 리노공업, ISC, 솔브레인, 티엘비, HPSP 등 반도체 테스트·소재 장비 기업들이 외국인 매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랐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 투자 확대에 따라 패키징·테스트·소재 장비 전반의 수요가 늘고 있다"며 "AI 서버 공급망 전반이 구조적 성장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피지컬 AI로 주목받던 로봇기업 로보티즈,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은 외국인 순매도 상위권에 올랐다. AI 하드웨어 종목군에 대한 단기 차익실현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선별 매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외국인 매도세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특히 시장에선 7일 오전 기준 1450원에 육박하는 원·달러 환율을 외국인들의 매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달러인덱스가 100선을 상회하고 있고,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외국인의 불안심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매도세를 단기 조정 구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지난달 한 달 동안 코스피가 20% 가까이 급등하면서 누적된 피로감이 차익실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AI 기술주의 밸류에이션 부담, 달러 강세, 금리 불확실성 등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연준의 완화 기조 유지와 양적긴축 중단 예고 등은 중장기적으로 유동성 환경을 개선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이번 매도는 구조적 상승 흐름 속 일시적 ‘숨고르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매도세는 단기 과열에 따른 포트폴리오 조정에 가깝다"며 "AI 인프라·바이오 중심의 성장 섹터는 오히려 외국인 자금 재유입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 "환율 안정과 금리 완화 시그널이 확인되면 12월 중순 이후 외국인의 순매수 전환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