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선 "없앤다고 없어지나"…연대ㆍ런던ㆍ외부인 부상
보험사 인수 여파에 현장 '손발 묶여' 불만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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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회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우리은행 내부의 오래된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조직문화 혁신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그러나 회사 안팎에서는 임 회장이 '계파 갈등'을 스스로 공론화하고, 스스로 해결하며 이를 '치적'으로 삼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연, 지연, 외부자 중심 인사에 '임종룡 라인'만 커지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비은행 확장을 위해 은행의 영업활동을 제약하며, '제발 영업을 하고 싶다'는 현장 실무자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 퇴직자들의 동우회를 '우리은행 동우회'로 통합했다고 밝혔다. 이는 두 은행이 합병한 지 26년 10개월 만에 이뤄진 조치다.
'계파 청산'은 임종룡 회장이 취임 직후부터 줄곧 강조해온 핵심 과제다. 임 회장은 취임 이후 "조직문화 혁신과 계파 문화의 완전한 해소"를 내세우며 인사·조직개편 전반에 변화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이러한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 통합 작업이라 할 만한 것은 동우회 통합과 인사자료에서 출신 은행 항목 및 학력·병역·출신지역 등의 정보를 삭제한 정도라는 지적이다.
합병 이후 통합 우리은행으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현재 대부분 부장급 중견 관리자를 맡고 있다. 행장, 회장을 배출할 가능성이 있는 임원 라인은 여전히 '출신 은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인사자료의 출신 정보 삭제 역시 한일-상업 통합 당시 이뤄졌어야만 한다는 분석이다. 합병으로 성장했지만 계파 갈등이 크지 않은 하나은행이 이런 사례다.
게다가 임종룡 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우리금융은 공식적으로 계파 갈등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임 회장이 취임 후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선언하며 계파 청산이 '경영 목표'가 됐다. 그리고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우리금융은 '갈등이 이제 해소됐다'고 선언했다. 임 회장이 계파 갈등 해소를 자화자찬하며 본인의 치적으로 삼으려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은행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아직 계파 갈등이 심각한데 '없앴다고 선언했다고 없어지나'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치권과 금융권 일각에서는 임 회장 취임 이후 오히려 새로운 계파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일·상업 출신을 넘어, 연세대 동문과 런던 근무 인연이 주요 보직에 잇따라 오르면서 통합이 아닌 또 다른 라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 회장 취임 첫해였던 2023년에는 임원진 10명 중 절반이 연세대 동문으로 구성돼 '학연 위주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연대 라인' 논란이 불거진 이후엔 정진완 우리은행장, 남기천 우리투자증권 대표 등 임 회장의 런던 근무 시절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 등용되며 '런던 라인'이 새롭게 주목받았다.
올해 들어선 외부 인사 영입 확대가 내부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우리금융이 인수한 성대규 동양생명 대표와 곽희필 ABL생명 대표 모두 외부 출신이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우리금융 보험인수단장으로 전 신한라이프 대표를 역임한 성 대표를 영입했고, 곽 대표는 신한금융플러스 GA부문 대표를 거친 신한금융 출신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이 임 회장이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그룹 색채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는 '임 회장이 연임에 성공할 경우, 이른바 '임종룡 라인'이 새로운 계파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일·상업 출신 간 구도보다는 임 회장 개인 라인 중심으로 세력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우리은행 출신들이 계열사 대표 등 주요 보직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대표급 인사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은행 내부에서는 한일·상업 출신을 막론하고 임 회장의 연임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내부에선 임 회장의 업적으로 거론되는 보험사 및 증권사 인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자본비율 등 금융위 조건부 승인을 받아 자회사 편입을 완료했는데, 이때문에 은행 등 여러 계열사의 발이 묶였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어서다.
이렇다보니 '차라리 회장 교체가 낫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적어도 영업을 못하게 '막는' 현재와 같은 상황은 해소되지 않겠냐는 점에서다. 실제로 올해 우리금융은 보험사 염가매수 차익을 제외하면 역성장했다. 핵심인 은행의 순익이 전년 대비 10% 가까이 줄었다.
우리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올해 들어 자본비율이 개선됐지만, 영업현장에서는 이를 맞추기 위해 손발이 묶인 채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사업자금 대출을 중단하고, 기존 대출의 상환이나 연장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임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생산적금융 등 정부 정책에 적극 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본비율 관리에 더욱 적극 나서는 모양새였다"라며 "연임 여부가 결정돼 불확실성이 해소되거나, 아니면 신임 회장이 취임해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