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가 살아남는 법...80兆→108兆까지 불어난 생산적금융, 국민펀드는 50兆
입력 2025.11.10 07:00
    정부 기조에 맞춘 '생산적금융 경쟁' 본격화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 나서 선제적 발표…'판정승'
    뒤따라 발표한 하나·농협금융…'규모 경쟁' 점화
    신한·KB금융 '장고' 끝 110조 확정...'정책 발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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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적금융이 정부 핵심 기조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지주들이 기업투자 등 실물경제 부문으로 자금의 흐름을 돌려 부동산 편중을 완화하라는 취지다. 이에 발맞춰 각 금융지주는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로드맵을 내놓으며 사실상 생산적금융 경쟁에 나서는 분위기다. 국민성장펀드에도 약속이나 한듯 각각 10조원씩 총 50조원을 내놓기로 했다.

      올해 말 회장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우리금융ㆍ신한금융과 내년 11월 임기 만료를 맞이하는 KB금융, 사법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는 하나금융과 국정감사서 중앙회장이 질타받은 농협금융 모두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는 분석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 정책 방향에 선제적으로 호응하며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난 9월 간담회에서 직접 생산적·포용금융에 총 8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연임 포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구체적인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보여주기식 발표'라는 평가도 나왔다. 반면 임 회장이 관(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선제적 행보를 보였다는 해석도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임 회장의 '판정승'이 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임 회장이 지난해 손태승 전 회장 시절 발생한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 등으로 연임에 불리한 입장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단 평가다.

      우리금융 발표 이후 다른 금융지주들도 앞다퉈 생산적금융 규모를 확대 발표하는 등 사실상 눈치 경쟁이 시작됐다. 생산적금융 규모로 정부 정책에 얼마나 협조적인지를 숫자로 가늠하는 듯한 흐름이 연출됐다.

      하나금융은 우리금융 발표 약 3주 뒤인 지난달 16일 생산적금융 84조원, 포용금융 16조원 등 1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은 '하나벤처스' 등 내부 투자 비히클을 보유하고 있어 빠르게 로드맵을 수립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후 농협금융이 지난 4일 'NH 상생성장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5년간 생산적(93조)·포용금융(15조) 등 총 108조원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지주 순익 기준으론 '5위'에 그치는 농협금융이 108조를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근 IMA를 신청한 NH투자증권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처럼 우리금융(80조)→하나금융(100조)→농협금융(108조)으로 규모 경쟁이 이어지는 사이, 신한·KB금융은 장고를 거듭했다. 두 곳 모두 내년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정부 정책 협조에 앞다퉈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생산적금융에서는 우리금융과 하나금융, 농협금융보다 한발 늦었다.

      특히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가장 적극적으로 '연임 행보'를 펼쳐 왔단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진 회장은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 지주 회장 중 유일하게 참석해 "은행이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해왔다는 국민 비난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라고 언급하는 등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에 나서 왔다.

      상생금융에서도 적극적인 행보를 펼쳐 왔다. 신한금융은 진 행장이 신한은행장 재임할 당시부터 추진했던 대표 사업인 배달앱 '땡겨요'를 대관의 징검다리처럼 활용해 왔는데, 최근까지 5000원 즉시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등 이번 정부의 '상생금융 행보'의 대표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금융지주 중 자산·이익 규모 '맏형'인 KB금융 또한 마지막까지 지원 규모를 놓고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파악된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이 내년 1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협조 메시지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을 거란 평가다.

      결국 두 금융지주는 9일 각각 생산적금융 110조원, 국민성장펀드 10조원 출자계획을 밝혔다. 생산적금융은 최대규모로 체면을 세웠고, 국민성장펀드엔 타 금융지주들과 동일 금액을 내놔 5대 금융지주가 출자금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신한금융은 당국과의 소통 과정에서 '실행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로드맵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지만, 당국이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하며 승인 절차가 길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KB금융 역시 정부가 납득할만한 숫자를 도출하기 위해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연임을 앞두고 제일 먼저 생산적금융 규모를 발표하면서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라며 "5대 금융지주 모두 출범 초 지지율 높은 정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은데다, 최고경영자(CEO) 관련 이슈가 존재하는만큼 최대한 정부 정책에 협조적인 모습을 연출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