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트워크, 자본력 강한 해외 운용사
AI DC 시장에서 국내 금융사 역할 제한적
건설사도 양극화…AI 밸류체인 보유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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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DC) 인프라 투자가 대거 이뤄진다. 자본력과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는 해외 운용사가 자금 조달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원전 설계·조달·시공(EPC) 등 AI 관련 역량을 갖춘 건설사의 경쟁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엔비디아,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빅테크의 국내 AIDC 투자 계획이 조 단위 규모로 구체화했다. AWS는 기존 투입한 5조6000억원에 추가로 2031년까지 국내 DC 인프라에 50억달러(약 7조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AI 인프라 구축에만 1000조원 안팎의 투자가 예정돼있는데, 국내에도 시장이 본격 개화하는 셈이다.
다만 AIDC 자금 조달 측면에서 국내 금융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거란 예측이 나온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대규모 DC 자산에 투자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 규모가 조 단위로 크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AIDC 프로젝트를 단순히 부동산 사업으로 보기에는 결이 다르다. 분양 및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주택·상업용 부동산과 달리 AIDC는 설계·구축·운영과 임차인(테넌트) 유치·관리가 까다롭다. 반도체 성능(스펙)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신형 반도체 출시 시점마다 구형 반도체 기반 DC 자산의 감가상각 속도도 빠르게 진행된다. 이외에도 수전 용량 확보, 지역 민심 달래기 등 대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접점이 적어서 AIDC는 테넌트 유치 작업부터 어렵다"며 "도심형 엣지 데이터센터 정도의 소규모 투자는 검토하고 있지만, 이보다 큰 규모의 AIDC에 투자하기에는 경험과 자본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결국 AIDC 투자는 네트워크가 있고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해외 인프라 펀드나 글로벌 PE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KKR, 블랙록, 블랙스톤 등 초대형 해외 운용사는 DC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블랙스톤 등은 남양주시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개발에 초기 단계부터 참여 의향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KKR은 아시아 DC 시장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 디지털 인프라 공급업체인 ST텔레미디어 글로벌 데이터센터(STT GDC) 지분 추가 인수를 검토했다.
AIDC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더라도 시장 개화 단계에서 수혜를 체감할 국내 기업이 당분간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에너지 인프라 구축, 반도체 공장 증설 등 그룹 내에서 설계·조달·시공(EPC) 경험이 풍부한 이룬 건설사 위주로 실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AI 시장 전방에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에너지, 전력망 등 인프라 수요가 커지고 있다.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데이터센터 72개가 사용하는 전력 용량은 1.08GW였지만, 2029년에는 데이터센터가 100개 이상으로 늘고 전력 수요는 2.37GW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추가 공급이 반영되지 않은 전망이다.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가 지목되고 있다. 이외에도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수소 연료전지 등이 거론된다.
현대건설은 원전 사업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10월 미국 에너지 디벨로퍼인 페르미 아메리카와 대형원전 4기 건설에 대한 기본설계(FEED)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 상반기 EPC 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EPC 계약은 지연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테라파워, 뉴스케일파워, 엑스에너지 등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 대형 원전과 SMR 주기기 모두 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두산뿐인 만큼 향후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AIDC 가동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규 공장 증설이 필수적이다.
오픈AI는 지난 10월 스타게이트 반도체 공급 파트너로 참여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현재 생산량의 2배가 넘는 HBM을 요청했다.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 양사는 협약 체결로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금 SK와 삼성이 운영하는 공장을 이론적으로만 봐도 두 배 정도고, 공장을 새로 지어야 된다"고 언급했다.
그룹 내 반도체 공장 시공을 담당하는 삼성물산과 SK에코플랜트의 역할이 부각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매출에서 삼성전자와 거래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의 영업거래 비중은 2022년 48%에서 올해 상반기 22%로 줄어들었다. 또 지난 2024년 1월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중단됐던 P4 내부공사가 11월 재개될 예정이며, 내년에는 P5 공사를 검토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도 SK하이닉스가 슈퍼사이클(초호황) 진입에 따른 설비 증설을 언급한 만큼 수혜가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10월 29일 진행한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메모리 업계 설비투자(Capex) 규모 증가는 불가피하고, 당사의 내년 자본지출은 상당한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며 "용인 클러스터 1기, 미국 인디애나주 어드밴스드 패키지 공장 건설 준비 등을 고려하면 인프라 투자 규모는 내년에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라 밝혔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AI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건설사도 AI 밸류체인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중요해졌다"며 "국내 주택 경기가 어려워 다수 건설사가 부진해 AI 관련 역량을 가진 일부 건설사와의 격차는 커질 전망"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