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이슈 선점한 한화, 힘 보탠단 HD현대…외교무대서 누가 더 존재감 드러냈나
입력 2025.11.11 07:00
    취재노트
    정기선 HD현대 회장, APEC서 기조연설
    미국 투자 검토 중이라며 'MASGA' 강조
    시장 시선은 한화그룹이 먼저 받은 모습
    한화, 핵잠·캐나다 잠수함 논의에서 앞서
    협력 강조 HD, 신중 행보 속 실기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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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APEC 행사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한국 기업들은 엔비디아로부터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공급받는 데 이어 핵잠수함 건조 논의까지 꺼내는 등 굵직한 경제 외교전이 활발히 이뤄졌다. 기업별 성과에 대해 시장 평가가 다소 엇갈리는데, 조선업 분야에선 한화그룹이 실효적 성과를 거뒀단 목소리가 나온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무대에 올라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참여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회장 취임 후 첫 공식 행보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 HD현대를 가장 준비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의 해양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내 조선소 인수, 현지 함정 건조, 조선소 재건에 적극 나서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를 두고 HD현대가 적극적 기조로 전환했다는 평이 따랐다. 다만 시장 반응은 대체로 차분했다. 구체적 투자 계획이 아닌 '검토 중'이라는 기존 메시지를 반복한 터라 주목도는 높지 않았다. 아직 세부적으로 조율해나갈 것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도 다소 신중한 행보란 평가가 따랐다.

      조선업 라이벌 한화그룹은 APEC 기간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60조원 규모의 잠수함 수출 세일즈에 나섰고, 핵추진 잠수함 건조지로 지목됐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경남 거제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를 직접 맞아 60조원 규모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CPSP) 세일즈에 나섰다. 장보고-Ⅲ Batch-II 잠수함 설계와 생산 현장을 직접 소개하며 한화오션의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을 강조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며 "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핵잠 사업은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조선소를 딱 집어 지목한 것은 상징성이 컸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기선 회장의 회장직 승진이 APEC 일정을 앞두고 예상보다 이르게 단행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화와의 조선·방산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리더십을 조기에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HD현대 입장에선 이번 외교무대에서 주목도가 한화로 기운 것이 아쉬울 만하다.

      HD한국조선해양은 APEC 직후 열린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선 특수선 사업과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놨다.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와 핵추진 잠수함, 국내 해군 전력 확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잠수함 생산능력(CAPA)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한·미 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짚었다. 사업이 본격화되면 상당한 엔지니어링과 통합 역량이 요구되는 만큼 국책사업 형태의 합동 프로젝트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잠수함 사업과 관련해 여러 차례 추가 답변을 내놓으며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HD현대는 미국 현지 기업 헌팅턴잉걸스, ECO 등과 MOU를 체결하며 한미 조선 협력 구도를 다지고 있다. 페루 국영 시마(SIMA) 조선소와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하며 잠수함 분야로도 수출길을 다변화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의 공격적인 투자 행보가 지속적으로 비교되면서 HD현대 내부에서도 부담이 크다"며 "이번 APEC에서 각 사가 이룬 성과를 두고 나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HD현대는 사업성을 면밀히 따지며 나아가고 있는데 내부적으론 이런 기조가 자칫 시장의 변화를 놓치는 '실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