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디지털 전환 시험대…'국채토큰' 시장 실효성은
입력 2025.11.12 13:40
    DLT·스마트계약 결합시 결제·대사 업무 자동화
    美 국채 기초자산으로 한 토큰화 MMF 확산
    "국내 제도·인프라 미비…방향성 설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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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채가 디지털자산 생태계에서도 '국채토큰' 형태로 기능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장외 중심의 채권시장에 디지털 인프라를 적용한다면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국내는 제도 기반이 미흡한 만큼, 정부 차원의 시범사업과 명확한 법제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12일 자본시장연구원은 '디지털 전환 시대의 국채 토큰화: 글로벌 동향과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시사점'을 주제로 KCMI 이슈브리핑을 개최했다.

      최근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쳐 토큰화(tokenization)가 부상하고 있다. 토큰화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플랫폼에 자산을 디지털 방식으로 생성·기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토큰화를 통해 실물경제 자산(RWA;Real World Asset)을 토큰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된다.

      토큰자산 시장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말 기준 전체 토큰자산 규모는 323억달러 수준으로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4.1배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채권, 펀드, 주식 등 전통 금융자산의 토큰화가 다른 자산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채는 디지털자산 생태계에서 국채토큰의 형태로 그 기능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분산원장(DLT)과 스마트계약을 결합하면 기존 장외 채권거래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결제·대사 과정을 자동화해 거래 속도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화영 자본연 박사는 "장외시장에서의 거래는 백오피스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국채 토큰화 과정을 거치면) 이런 것들을 단축할 수 있다"며 "쌍방 간의 거래뿐만 아니라 다수 참여자가 연계된 복수 거래에서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확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채는 금융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산가격 결정에서 무위험금리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데 이어 높은 신용도와 유동성을 바탕으로 환매조건부채권(레포)거래, 파생상품거래 등에서 담보증권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국채토큰이 디지털 산업 생태계를 효율적으로 조성하는데 지원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새로운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 담보 관리의 효율성을 (국채토큰을 이용해)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기간 내 국채 발행이 토큰 형태로 전환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큰화를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데다 발행 당국의 주도로 국채토큰을 발행한 사례는 제한적인 수준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홍콩, 필리핀, 슬로베니아, 룩셈부르크 등 4개국이 국채토큰을 발행했다. 다만 홍콩을 제외한 3개 국가에서 발행한 국채토큰은 규모와 만기 측면에서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홍콩 정부는 국채 토큰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데, 홍콩통화청(HKMA)은 녹색국채를 토큰으로 정례 발행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미국에서는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미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한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토큰화 MMF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 함께 미국 단기 국채 수요 기반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 박사는 "토큰화 MMF는 사실상 즉각적인 결제가 가능해 유연성이 높다"며 "또 기존 시스템에서는 MMF를 담보증권으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었는데 토큰화를 통해서 담보증권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연은 국내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토큰화 시스템 도입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디지털자산 생태계 조성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채토큰의 구조, 유통 방식, 결제 메커니즘에 대해 다양한 기술적 검증을 이어가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에 관한 규율체계 정비안이 금융위원회를 통해 발표됐으나, 아직 관련 법제화가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또 토큰화의 활용도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통한 부동산 조각투자 등에 머물고 있다.

      정 박사는 "싱가포르는 투기적인 성격이 강한 암호 자산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유지하지만, 실물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생태계는 적극 조성하겠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기조를 적극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필규 자본연 박사는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RWA 자산들은 비유동성이거나 비전통적인 부동산 또는 지식재산권 위주로 형성돼 있다"며 "이게 보다 큰 흐름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채권이나 주식 등 전통적인 투자 자산으로 이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콩이 정부 주도로 녹색국채를 활용해 토큰화 시장을 육성하듯, 우리도 국채토큰을 마중물로 삼아 시범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형 펀드를 토큰화하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