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적자에…디지털보험사 한계 뚜렷
김동원 '캐롯손보' 이어 오너 3세 방향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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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오너 3세 경영의 장이었던 '디지털보험사'의 영향력이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비대면 영업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적자가 누적되면서 모회사에 대한 의존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모회사로 흡수되거나 종합보험사의 영업전략을 따라가는 등 보험업계의 실험이 종료되는 모습이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중현 교보라이프플래닛(교보라플) 디지털전략실장은 올 하반기부터 교보생명의 '글로벌제휴담당'으로 겸직을 시작했다. 신중현 실장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차남으로 2020년 교보라플에 합류했다.
교보생명에서 '담당'은 상무 이상의 임원이 맡고 있다. 글로벌제휴담당은 올 하반기 인사에 새로 신설됐다. 신중현 실장은 모회사에서 임원급의 중책을 맡게 됐지만, 교보라플에서의 업무도 지속할 예정이다.
장남인 신중하 교보생명 상무의 행보와도 비슷하다. 신중하 상무는 2015년 교보생명 관계사인KCA손해사정에 입사한 뒤 경영학 석사(MBA) 과정 등을 거쳐 2022년 교보생명으로 옮겼다. 작년 말 상무에 선임된 뒤 AI활용·VOC 데이터 담당 경 그룹 경영전략 담당 업무를 수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지주사 전환을 앞둔 교보생명이 경영 승계를 위한 포석을 놨다는 해석이 나온다. 능력에 입각한 인사를 강조하는 교보생명의 원칙상 교보라플에서의 역할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교보라플은 2013년 국내 최초 디지털 생명보험사로 시작했다. 혁신적인 상품을 통해 생명보험 시장의 '아이패드'가 되겠다는 목표였지만, 이후 한 번도 연간 흑자를 이루지 못했다. 2022년 신중현 실장이 합류한 후에도 적자가 이어졌다. 2022년 -141억원, 2023년 -240억원, 2024년 -256억원으로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
모회사인 교보생명의 지원으로 버티는 실정이다. 교보생명은 지금까지 6번의 유상증자를 걸쳐 3370억원을 투입했다. 교보라플은 현재 '리부트' 전략을 통해 보장성 보험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치매간병보험, 여성건강보험 등 이미 종합보험사들의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앞서 한화 오너 3세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역시 디지털보다는 글로벌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지난 2019년 설립된 캐롯손해보험은 2022년 -832억원, 2023년 -748억원, 2024년 -6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모회사인 한화손해보험에 흡수 합병됐다.
매월 탄 만큼 후불로 결제하는 '퍼마일 자동차보험' 등이 혁신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흑자전환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표적 민생 보험으로 분류돼 요율 인상이 제한되는 자동차보험의 한계가 뚜렷했다.
금융지주 계열 디지털보험사는 이미 '디지털'을 뗐다. 하나손해보험과 신한EZ손해보험의 온라인채널 판매 비중은 80% 미만이다. 디지털보험사는 총 보험계약 건수의 90% 이상이 온라인채널에서 발생해야 하지만, 이들은 종합보험사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어 문제는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디지털보험사들이 혁신 상품을 선보이겠다는 초기 목표와는 다르게 결국 기존 시장의 흐름을 쫓아가는 모습"이라며 "이렇다 할 실적을 내기가 어려우니 오너, 혹은 모회사들의 관심사도 혁신 대신 적자 축소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