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통신사서 AI 디벨로퍼로…비전엔 공감, 실현 난도는 걱정
입력 2025.11.18 07:00
    취재노트
    통신사 한계 벗어나기 위한 'AI 디벨로퍼' 비전
    인프라 사업 공통점 많고 계열 시너지도 기대
    초기 단계서 사업성 증명 어렵고 자본도 부족
    AWS 손 잡아도 역할 제한적…쉽지 않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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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텔레콤은 작년부터 통신사 대신 국가대표 인공지능(AI) 사업자 정체성을 강조해왔다. 최근 수장 교체 이후에도 AI 디벨로퍼로서 인프라 사업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SKT가 내놓은 비전이나 청사진 자체에 대해선 수긍하는 반응이 많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래로 통신사들은 망만 깔아주고 돈은 남이 벌어간다는 불만을 내심 품고 있었다. 고객 접점은 애플의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가 틀어쥐고 구독료는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가, 발생하는 데이터는 플랫폼 기업들이 독식하는 구도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정부 관리를 받는 산업이니 네트워크 확충 부담을 요금으로 전가하는 데도 한계가 크다. 과실은 늘 남에게 양보해야 하는 처지였던 셈이다.

      통신사가 아니라 AI 디벨로퍼로 회사 간판을 교체한 것도 같은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AI가 몰고 올 변화는 스마트폰보다 더 거셀텐데, 시장은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 인프라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통신사 한계를 벗겨내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AI 인프라 구축은 통신사가 수십년 해온 일과 공통점이 많다. 대규모 설비투자(CAPEX)로 인프라를 깔아놓고 운영비용(OPEX)을 최적화하면서 여러 형태로 요금을 징수하되, 내용물이 통신망에서 데이터센터(DC)로 바뀌는 정도로 요약된다. 반면 성장 여력도 없고 규제에 묶여 있는 통신 산업에 비해 매력은 곱절로 크다. SKT가 전면에서 설계, 구축, 운영을 통합 지휘하면서 SK브로드밴드나 SK에코플랜트, SK가스, SK엔무브 등 그룹 계열사에도 두둑한 일감이 떨어질 수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AI DC는 기존 국내 클라우드사업자(CSP)들도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영역이라서 아직은 무주공산에 가깝다"라며 "추론 시장이 막을 올리면서 국내에도 연산 수요가 늘어날 테니 SKT가 가장 합당한 구상을 먼저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구상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적지 않다. AI DC를 짓고 대여해 주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SKT는 현재 그룹 AI 인프라 청사진의 첫삽 격으로 울산 AI DC를 짓고 있다. 약 6만장의 가속기(GPU)가 투입되는 100MW급 대형 설비다. SKT는 해당 DC를 향후 1GW 이상으로 키워내 동북아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7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조달에서부터 외부 투자자 유치에 애를 먹는 상황으로 확인된다. 초기 단계여서 핵심 인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문제도 있지만 사업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아직 AI DC는 내수 시장에 마땅한 임차인 풀이 없다. 그룹 내부 수요로도 다 채우기 힘들텐데 이 경우 사업성은 더 떨어진다"라며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도 결국 CAPEX 부담을 나눠지자는 건데 SKT가 수익률을 어떻게 보장해 줄 수 있을지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인프라는 통신 산업에 비하면 회수 불확실성이 매우 큰 편이다. 통신망의 경우 정부 인허가 규제로 3사 과점이 보장되기도 하지만 큰돈 들여 망을 교체해도 고객 점유율에 변동이 없으면 안정적으로 회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100MW급 AI DC를 채울 수 있는 사업자는 글로벌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실제로 현재 논란이 되는 AI DC 증설 붐 역시 대부분 오픈AI나 구글, 메타, 앤스로픽 등 소수 AI 파운데이션 사업자를 겨냥하고 있다. 전방 AI 작업수요(워크로드) 대부분이 이들에게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초거대 CSP와 전략적 협업을 이어간다고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AI 디벨로퍼 모델이 통할까 하는 우려도 있다. 국내 진출하는 CSP들에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겠지만,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병목을 일으키는 핵심 반도체나 전력망 사업이 아니라면 실질적인 수익 배분에서도 CSP에 우선권이 밀리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도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한 임원은 "직접 CSP 모델로 가기에는 업력이나 자본 규모가 협소하고, AI 디벨로퍼 모델로는 EPC 솔루션을 제공하는 선에 그칠 수도 있다"라며 "아직 극초기 단계라서 전망이 어렵긴 한데, 매력적인 만큼 진입장벽 역시 무척 높은 시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