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계기로 LP들 요구 한층 강화
해외선 노동·인권 위반 시 커밋 축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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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런던베이글뮤지엄 직원 사망사고 이후 연기금·공제회 등 LP들이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산재보험기금이 JKL파트너스에 관리 강화 조치를 주문하는 등, 국내 LP들이 PEF 운용사에 기대하는 사회적 기준의 무게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용노동부 산하 산재보험기금(산재기금)은 PEF 운용사 JKL파트너스 측에 노동환경 등 사회적 책임 요소에 대한 더욱 면밀한 검토와 관리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재기금이 출자한 JKL의 블라인드펀드 투자처인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20대 직원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단순한 재무성과를 넘어 안전·노동 이슈까지 운용사의 관리 책임 범위에 포함시키라는 요구가 커진 셈이다.
앞서 산재기금은 올해 콘테스트를 통해 PEF 운용사 5곳을 선정해 총 2400억원을 출자했다. 이 가운데 JKL은 대형 부문에서 최종 위탁운용사로 선정돼 약 600억원을 배정받았다. JKL은 산재기금을 비롯해 국민연금, 산업은행, 교직원공제회 등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약 97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사고로 인해 산재기금 측에서 JKL에 확약한 펀드 출자를 철회하는 방안도 검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다만 산재기금 측에서 실제로 공식적인 철회 검토 절차에 들어간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산재기금의 성격을 감안해 사안의 중요성은 인지되는 바이지만, 해당 펀드에 출자한 자금인 점을 고려하면 특정 포트폴리오 한 곳의 이슈로 전체 펀드 출자를 철회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단건으로 ‘출자 철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위기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LP들의 감시는 한층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다.
JKL–런베뮤 사례의 경우, 사망사건은 7월 중순에 발생했지만 이미 6월 말부터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준비해 7월 말 계약을 마무리하고 8월 말 인수를 완료했다. 이 때문에 실사나 협상 과정에서 해당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매각자나 매도인 모두 이 사안을 ‘결정적인 이슈’로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자본시장에서 ESG가 화두가 된 지는 오래됐지만, PEF 거래에서는 사회적 이슈가 출자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로 작동한 사례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B2C 기업의 경우 사회적 이슈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면 매출과 수익성에 직결될 수 있어, 더 이상 단순한 ‘정성적 이슈’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실사 과정에서 산업재해, 노동 문제, 환경 리스크 등 다양한 사안을 점검하지만, 이러한 사고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고 예방 조치를 해도 발생을 100% 막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그래서 사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안이라면 최종 출자 결정이나 LP 보고에서 핵심 이슈로 부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최근 국민연금의 움직임이나 런던베이글 사태처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 속에서 GP들도 안전관리·리스크 점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고, LP들 역시 이전보다 관련 이슈를 더 면밀히 보겠다는 기조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도 올해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시 운용사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를 심사 기준에 공식적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정량 지표에서 이미 상향평준화된 국내 PEF의 특성상 이 항목이 사실상 운용사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해외에서는 사회적 책임 이슈가 실제 출자 축소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은 2024년 포트폴리오 기업의 노동 기준 위반 문제를 이유로 일부 PEF 운용사에 대해 기존보다 재출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다음 펀드에 재출자를 하지 않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미 펜실베이니아 주의 연기금 사례도 거론된다. 2019년 펜실베이니아 공무원·교사 연금인 PSERS는 플래티넘에쿼티(Platinum Equity)의 신규 바이아웃 펀드를 검토하던 중 포트폴리오사 시커러스(Securus)의 ‘수감자 전화요금 폭리·감청’ 논란이 불거지자 출자 안건 표결을 연기했다. 같은 주의 또 다른 연금인 SERS는 펀드 출자 제안을 부결했는데, 이는 사회적 책임 리스크를 이유로 신규 커밋을 거절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가 불거지면 감사·감독이 들어오는 등 일이 커지기 때문에 GP들에게 더 신경 쓰도록 주문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도 기업 이미지와 이해관계자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지는 만큼, LP들도 앞으로 ‘잔소리’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