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시장서 국내 금융사 빠지니…KKR 등 해외자본은 '사재기'
입력 2025.11.20 07:00
    PF 부실·금리 부담에 국내사 개발사업 사실상 중단
    공급량 5분의1 토막…2026~2027년 공급 공백 가능성
    블랙스톤·KKR·하인즈 등 외국계 공격적 매입 행보
    높아진 인허가 장벽, 기존 물류센터 가치 재평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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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들어 국내 물류센터 시장에서 자금 주도권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 금리 부담, 공사비 상승,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의 여파로 국내 금융사들이 사실상 신규 투자에서 손을 뗀 가운데, 글로벌 운용사들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매입을 확대하고 있다. 공급 절벽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3년 뒤 물류센터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해부터 블랙스톤, 블랙록, KKR, M&G,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장기 기관투자가들은 수도권 주요 물류센터와 개발권역을 잇따라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KKR·크리에이트자산운용 컨소시엄이 인천 청라 로지스틱스센터 인수전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며 또 한 건의 대형 물류 자산을 선점했다. 가격은 약 1조원대. 클로징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단 분위기지만, 외국계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재차 확인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반면 국내 금융사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PF부실 사태 이후 국내 증권사 및 운용사들은 개발 프로젝트에서 대거 EOD(기한이익상실)를 맞았고, 그 충격이 올해까지 이어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위치·입지 판단도 제대로 못하고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킨 물류센터가 작년부터 줄줄이 손상 처리됐다"며 "이후 개발은 사실상 멈췄고, 지금은 내부적으로 신규 딜 승인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권이 빠진 자리는 외국계가 채우고 있다. 글로벌 LP(출자자) 자금은 장기·안정 성향이 강한데 반해, 국내 금융사들은 임원진 임기와 연동된 단기 실적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구조적 차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외국계는 10년 이상을 보는 구조지만 한국 금융사는 2~3년 실적이 더 중요해 리스크를 과감히 감내하기 어렵다"며 "그 사이 외국계가 EOD 자산을 싸게 쓸어 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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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수급 측면에서는 이미 '공급 쇼크'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코로나 이후 2018~2022년 사이 폭증한 이커머스 거래 덕에 물류센터 개발이 2~3배 속도로 성장했다. 2022년 공급량은 120여만평으로 전년 대비 두 배, 2023년과 2024년은 180~190만평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 예상 공급량은 불과 30~40만평. 5분의 1도 채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이 숫자가 단기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리상승기 동안 착공·시공 단계에서 멈춘 프로젝트가 많아 2026~2027년 공급 라인업이 극도로 비어 있다는 점이 업계의 공통 분석이다. 물류센터의 인허가가 까다로워진 것도 공급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인허가 난이도가 3년 전보다 훨씬 높아져 사실상 증설이 쉽지 않다"며 "지금 지어져 있는 물류센터는 3년 뒤 최대 상업용 부동산 수혜 섹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적 공급 공백을 예상한 외국계는 이미 작년부터 선점 전략에 착수했다. KKR은 청라에 이어 화성·안성 일대 중대형 물류센터를 꾸준히 매입 또는 협상 중이고, M&G·모건스탠리·하인즈(Hines)는 블라인드펀드 기반의 투자를 본격화했다. 

      PGIM·워버그핀커스 등도 국내 물류센터 라인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모두 "평당 매매가격이 저점 구간"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임차시장 상황 역시 외국계의 베팅을 뒷받침한다. 수도권 상온 물류센터는 공실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이커머스와 3PL 업체들의 장기 임차 수요는 견조하고, 신규 공급이 급격히 줄면서 임대료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냉장·저온센터는 상대적으로 공실이 있지만, 대형 이커머스 기업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수요가 살아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에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번 사이클을 외국계가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몇 년간 공급이 잠겨버린 이상, 기존 자산 가치가 자연스럽게 재평가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운용업계 관계자는 "2027년 전후로는 몇몇 물류센터가 사상 최고가를 다시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때 국내 금융사들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가, 낮은 금리의 셀다운(재매각) 물량 투자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형 이커머스 사업자인 쿠팡은 물류 전략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최근 자체 AMC(자산운용사)를 설립하고, 개발부터 임대·소유까지 일괄 구조를 갖추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인허가 장벽이 높아지는 환경에서 '직접 개발' 능력을 확보해야 안정적인 배송망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물류센터 시장은 금리 인상부터 PF 위기까지 다중 충격을 겪었지만, 외국계는 오히려 이를 '매수 타이밍'으로 간주하고 있다. 공급 공백과 임대 시장의 회복, 그리고 한국 내 이커머스 성장률이 다시 안정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