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피' 관건으로 배당 분리과세 꼽은 증권가…적용 범위 두고 여야 공방 예고
입력 2025.11.21 07:00
    여야, 최고세율 25% 인하엔 공감…'적용 요건'이 승부처
    증권가 "5000피 열쇠는 세제"…반도체·AI 후속 모멘텀 기대감
    대만식 분리과세 효과 가능할까…국내선 대상 기업 17%뿐
    '부자 감세' 프레임·세수 감소 논란…조세소위 난항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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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스피 '5000피' 시대를 향해 정부와 정치권이 꺼내든 핵심 카드로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부상하고 있다. 최고세율을 기존 정부안(소득세 35%)보다 더 낮은 25% 수준으로 인하하는 데 여야가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정작 제도의 실효성을 가를 '적용 범위'를 두고는 치열한 공방이 예고된다.

      증권가에서도 내년 증시를 이끌 정책 모멘텀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지목하며, 곧 열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최근 랠리를 주도했던 반도체·AI 관련주가 'AI 거품론'과 함께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추가 상승 동력을 위해선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16일 금융권 및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고위 당·정·대 협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5%로 낮추는 방향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주주환원 확대가 필수라는 논리다. 당초 35%를 고수하던 정부 기류도 코스피가 4000선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자 한층 완화된 쪽으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최고세율 25% 인하 필요성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기류다. 여야 모두 방향성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어, 세율 인하만 놓고 보면 시장에서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현행 소득세법에서 배당·이자 등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인 경우 세율 15.4%(국세 14% + 지방세 1.4%)로 분리과세되지만, 이를 넘어서면 다른 소득과 합산돼 최고 45%(지방세 포함 시 49.5%)의 누진세율을 적용받는다. 고액 배당 투자자에게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세율이 매겨지는 만큼, 정책 손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세율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가 걸림돌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 초안(최고세율 35%) 기준으로 향후 4년간 약 9136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고세율을 25%까지 더 낮출 경우 감소 폭은 이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 내부에서는 조정 폭과 시행 시기 등을 두고 여전히 셈법이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증시가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주목하는 이유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 낮은 주주환원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 증시의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8~1배 내외에 머무는 반면, 대만은 약 2배 중후반 수준(2.0~2.6배)을 받고 있다. 

      산업 구조나 기업 실적 측면에서 한국·대만 간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주환원 정책과 배당소득 과세 체계가 밸류에이션 격차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책 당국이 잣대로 삼는 곳도 역시 대만이다. 대만은 2018년 배당소득 과세체계를 개편해 종합과세 시 높은 세 부담 대신, 28% 단일 분리과세 선택제를 도입했다. 이후 배당총액과 배당성향이 빠르게 늘면서 ROE와 PBR이 함께 상승했고, 한국 정부가 '5000피' 슬로건과 함께 배당세제 개편을 밀어붙이는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대만 TSMC의 실적 성장세를 감안하더라도 대만과 한국의 PBR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지는 건 과도한 수준"라며 "대만과 한국 증시의 가장 큰 차이가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주주환원 정책인 만큼,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정리되면 국내 증시도 PBR 기준으로 대만에 근접하거나 상회할 여력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형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대만식 효과를 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안 기준 고배당 기업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전체 상장사(코스피·코스닥 2361개) 중 409개사(17.3%)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시한 고배당 기업 요건은 ▲배당성향 40% 이상 또는 ▲배당성향 25% 이상이면서 직전 3년 평균 대비 배당을 5%포인트 이상 늘린 기업으로 한정돼 있다.

      이에 따라 논의의 진짜 쟁점은 '세율'이 아니라 '적용 범위'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7월 발표안 수준의 요건을 유지하려는 분위기지만, 야당과 시장을 중심으로 배당성향 기준을 30% 안팎으로 낮추거나 모든 상장사에 분리과세를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무 좁은 요건으로는 제조·IT 등 투자 확대가 필요한 업종에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여당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부자 감세 프레임도 변수로 꼽힌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상위 10%가 배당소득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분리과세는 초부자 감세가 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세율·적용 범위에 대해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관련한 논의는 이르면 다음주에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다. 증시 부양과 조세 형평성 사이에서 여야가 충돌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적용 요건과 시행 시기를 둘러싼 절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여야 합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정부 원안(최고세율 35%)에 가까운 형태로 법안이 처리되거나, 논의 자체가 지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여야가 최고세율 25% 인하 방향에는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지만, 적용 요건과 대상 범위, 시행 시기를 두고는 여전히 이견이 있다"이라며 "이르면 다음주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조세소위 안건으로 올라올 예정인데, 구체적인 윤곽은 논의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