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 분양에 손실 위험 커지자
대주단은 '승인 지연' 훼방까지
수면 아래 쌓여온 PF 리스크 표면화
-
책임준공 사업장을 두고 대주단과 신탁사의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손실 위험이 커지자 서로 책임을 피하려 '폭탄'을 떠넘기는 기류가 강해졌고, 현장 곳곳에서 미묘했던 균열이 노골적인 충돌로 번지고 있다.
지난 17일 법원은 신한자산신탁이 맡은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소송에서 신탁사가 대출원금 전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책임준공 약정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이 신탁사에 있다고 봤으며, 계약서상 책준 의무 미이행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모두 신탁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봤다.
신한자산신탁은 평택과 안성 물류센터 사업장에서 발생한 책임 준공 미이행 소송에서도 연속으로 패소한 바 있다. 무궁화신탁 역시 지난 6월 새마을금고 대주단을 상대로 한 책준 소송에서 졌으며,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다.
신탁사들이 연이어 패소하며 업계 전반에 불리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대주단들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는데, 이들은 배상 조건 합의를 종용하며 신탁사에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최근 노조 파업과 공사 중단 사례가 잇따르면서 외부 변수로 준공 지연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신탁사는 책임준공 기한을 맞추기 더 어려워졌지만, 대주단은 이러한 지연 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책임을 신탁사 측에 그대로 돌리는 분위기다.
본PF 전환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사업을 진행했던 일부 사업장에서 '뇌관'이 터지고 있기도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기한을 맞추기 어려운 현장들이 적지 않고, PF 진행에 급급했던 상당수 사업장들은 준공이 되더라도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분양대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대주단이 책임준공 기한을 고의로 늦추는 정황까지 포착되고 있다.
시작은 본PF를 받기 위해 분양률을 끌어올리는 데서 비롯된다. 분양대행사는 분양률을 맞추기 위해 직원들에게 여러 채의 계약금을 넣게 하는 방식의 '허위 수요'를 만들어낸다. 내부 인력이 실수요자인 것처럼 계약을 체결해 분양률을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분양대행사 하나의 위법 행위이지만, 업계에서는 이 정도 계약 패턴이면 대주단·시행사·신탁사 모두 눈치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럼에도 본PF만 확보하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는 판단에 묵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허수 계약의 후폭풍은 준공 이후 드러난다. 실제 잔금을 낼 실수요가 없어 대주단의 회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다. 실제 한 신탁사가 운영하는 인천 지역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분양대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대주단은 책준 기한까지 사용승인을 미루며 신탁사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사용승인 절차를 늦추기 위해 사업장을 점검한 뒤 시청에 비토를 넣는 방식도 동원된다. 실제 법적 문제 제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통상적인 건설 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안들까지 꼬투리 잡기에 가깝게 끌어와 승인 시점을 미루는 식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은 숨은 사례가 더 많단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기한을 앞두고 대주단이 사실상 사업 진행을 방해하거나 승인 절차를 지연시키는 일은 시장에서 비일비재하다"며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신탁사 소송 전문 변호사는 "사안마다 판단해야 할 주요 초점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계약서상으로 봤을 때는 법원이 신탁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대주단이 이를 이용해 책임준공 기한을 넘기도록 유도하더라도 그런 행위가 있었다는 걸 입증해 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탁사들의 부담은 빠르게 재무지표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영업손실은 1195억원, 순손실은 1343억원에 달했다.
책임준공형 사업 비중이 높은 무궁화신탁, KB부동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등은 적자폭이 특히 컸다. 부동산 신탁사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증권사, 캐피탈, 저축은행, 상호금융권 등의 자산 건전성까지 크게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