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 규제·공개매수·볼트온 금지·공시강화 등
무력한 PEF업계 "수용할 건 수용해야"
물밑선 협회 설립 움직임…대관능력 강화 목적
"자칫 정치권 대립각으로 비칠라"…신중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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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 한 해 우리나라 사모펀드(PEF)업계의 화두는 단연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돌입이다. 아시아 최대 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살려낼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면서, 정치권에선 PEF업계를 향한 날 선 반응들과 이에 상응하는 규제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재 사모펀드 활동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 법률안은 국회에 총 77건이 계류돼 있다. 이 가운데 약 10건의 법안들이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직접 겨냥한 법안이다. 대부분의 법안이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의 주도로 입법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22대 국회 회기 내에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규제 법안의 상당수는 PEF의 차입금 비율을 낮추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홈플러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PEF가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차입(인수금융)을 일으키고, 금융기법과 배당 또는 자산매각을 통해 회수하는 전략에 대한 논란이 불이 붙었다.
2021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사모펀드는 개인 및 유흥업 대상으로 한 대출을 제외하고 펀드의 자기자본 대비 최대 400%까지 차입이 가능하다. 이 차입한도를 200% 수준으로 낮추겠단 것이다.
추진되는 개정안 중 레버리지 비율 규제가 다수 포함돼 있다보니 PEF 업계에선 법안 통과를 유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당 규제는 추진중인 법안들 가운데 업계의 부담이 가장 적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실적으로 최대 400%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실질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PEF 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는 "홈플러스 사태로 PEF의 레버리지 전략이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만큼, 이와 관련한 규제는 PEF업계에서도 받아들여야하는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정치권에서도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필요하고 PEF업계에서도 수용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입법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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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모'란 용어에서 드러나듯 소수의 출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PEF들은 일반 금융기관들과 달리 공시 의무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홈플러스 사태 발생 이후 운용사의 지배구조, 재무상황, 포트폴리오 현황, 내부통제 수준 등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창구가 많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에 사모펀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한 입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등 MBK로 인한 논란이 심화하면서 금융감독원과 일부 국회의원실에선 주요 PEF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개별 운용사들이 요구받은 자료는 ▲조직도 ▲정직원의 수 ▲내부통제기준 ▲핵심인력들의 연락처와 레버리지 규모 등에 불과했다. 포트폴리오의 구체적인 내역과 재무제표, 출자자 리스트와 보수 등 운용사의 현황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요청받지 않았다. 이는 이제까지 금융당국에서 운용사들의 아주 기초적인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공시와 보고 의무를 규정하는 법안에 대해 PEF업계에선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구체적인 운용 내역과 보수, 수익률과 같은 민감한 자료가 외부에 노출되는 건 운용사뿐 아니라 돈을 맡긴 LP들도 부담이 크다는 평가다.
다른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급 관계자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단 취지는 이해하지만, 사모펀드는 말 그대로 특정 투자자들을 자금을 성실하게 운용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공모펀드와 유사한 보고·공시 의무를 부과한다는 건 사모펀드 제도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면서 "정부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긴 어려운 운용사들은 물론, 출자기관들 역시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트폴리오 투자 전략을 제한하는 개정안도 계류중이다.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소액주주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의 공개매수 의무화, 일정기간 동안 보유 주식을 매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추진중이다.
공개매수가 의무화하면 사모펀드의 경영권 인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차입 규제가 현실화한 상황에 더해 모든 지분에 경영권 지분에 준하는 가격을 매겨 인수해야 하는 상황에선 활발한 투자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단 의견도 있다.
정혜경 의원(진보당)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엔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이 제3의 기업에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서 PEF업계에선 사실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국내 PEF 운용사 한 관계자는 "다른 법안들은 몰라도 볼트온을 제한하는 법안은 사모펀드의 포트폴리오 관리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본다"며 "업계의 구조조정에 힘을 보태고 기업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에 굳이 규제가 필요한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현재, 정치권에서 PEF를 향한 규제를 계속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개별 PEF 운용사들은 물론 억울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MBK 사태로 인한 PEF 전반에 원죄(?)가 있는만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막을 수 있는 법안은 최대한 막아보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PEF협의회를 '협회'로 격상하자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제아무리 덩치가 큰 운용사라 할 지라도 금융당국과 정치권을 상대로 대관 업무를 펼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협회를 결성해 보다 공식적으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초기 논의 단계고, 협회 설립이 현실화하기까진 실무적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은 게 현실이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에 맞서는 모습이 부담스럽단 의견도 있다.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공식창구가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은 없는 듯 보이지만, 정치권이 PEF업계에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대결 구도를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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