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시대 키워드는 '소비자보호'…금융권도 발맞춰 조직 격상 채비
입력 2025.11.28 07:00
    미래에셋, 조직개편서 소비자보호본부 부문 격상
    한투도 조직개편서 사장 직속 소비자보호TF 신설
    이찬진 취임 이후 금감원 기조 소비자보호로 전환
    은행·증권 등 소비자보호 중심 조직 재배치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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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개정 금융소비자보호법·지배구조 규제 강화에 더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이후 '소비자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금융권의 조직개편 방향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준법감시·리스크관리 조직이 내부통제의 '축'이었다면, 앞으로는 금융소비자보호 조직이 전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내부통제 및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본부를 부문급 조직으로 격상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금융소비자보호부문 대표로는 기존 준법감시부문 대표였던 신윤철 대표가 선임됐다. 준법감시부문 대표에는 컴플라이언스본부 본부장이었던 기용우 상무가 승진·보임됐다.

      표면적으로는 조직 간판만 바뀌고 그에 따른 인사 이동이 뒤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에선 사실상 준법감시보다 소비자보호에 힘을 실어준 인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 조직 개편을 보면, 그동안 준법감시부문을 맡았던 신윤철 대표를 금융소비자보호부문으로 옮겼다"라며 "회사 입장에선 준법감시보다 소비자보호를 더 중요한 축으로 보겠다는 메시지고, 내부에서도 '소비자보호 쪽에 힘을 실어준 인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지난 10일 사장 직속 '소비자보호 태스크 포스(TF)'를 신설했다. 소비자 보호와 고객 신뢰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상품 설계·판매·사후관리 전 단계에 걸친 근본적 시스템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취지다. 신설된 소비자보호 TF는 개인고객그룹장, 소비자보호 담당 임원(최고고객책임자·CCO), PB 전략본부장 등 주요 고객 대응 부서의 핵심 인력으로 구성됐다.

      이 밖에도 현재 복수의 금융사들이 연말 조직개편을 준비하며 소비자보호와 관련한 조직을 격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이찬진 금감원장의 강한 메시지가 자리한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금융소비자보호를 금감원의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며, 전 업권 CEO들을 한자리에 불러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개선과 내부통제 강화를 직접 주문했다. 특히 민원·분쟁이 잦은 상품 구조, 영업 관행 등을 'CEO 책임 과제'로 못 박으며 경영진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찬진 신임 원장 시대에는 금융사고나 대형 IT 장애는 물론이고, 소비자보호 이슈에서 한 번 크게 사고 나면 그 회사는 끝이라고 봐야 한다"라며 "지금은 수익성·시장 점유율보다 '사고 안 나는 구조'를 만드는 게 경영진의 1번 과제가 됐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감독·검사 방향도 소비자보호 중심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의 평가 항목을 손질하면서 단순한 제도 '마련' 여부보다 실제 영업 현장에서 기준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민원·분쟁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보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금융사 조직도 소비자보호 축을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은행·증권·보험사 대부분은 준법감시인 산하에 소비자보호 조직이 매달린 구조였지만, 최근엔 소비자보호를 준법·리스크와 동급의 '부문' 혹은 '본부'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이 늘고 있다. 연말 인사·조직개편 시즌을 앞두고 각 금융사의 기획·리스크 부서가 금감원 기조를 반영한 조직 설계에 나선 분위기다.

      특히 민원·분쟁이 잦았던 영업 채널과 직결된 부분은 1차 개편 대상군으로 거론된다. 일부 은행은 영업부문 안에 흩어져 있던 불완전판매 점검 기능을 별도 소비자보호 부서로 통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도 리테일·WM 조직 내에 흩어진 상품심사나 설명의무 점검 기능을 소비자보호 체계 안으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준법감시인이 모든 내부통제를 책임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상품·영업 전 과정에서 소비자 이슈를 전담해서 보는 조직을 별도로 세워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지배구조법상 책무구조도에서도 소비자보호 책무를 이사회·경영진 레벨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간판만 바뀐 조직개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직을 격상하더라도 인력·예산·권한이 따라오지 않으면,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영업부서나 기존 준법·리스크 조직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보호 책임자를 명목상 '부문대표'로 올려놓고도,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한다면 감독당국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한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지금 금융사 내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소비자보호부문을 어느 레벨까지 올리고, 어떤 권한을 줘야 금감원이 납득할까'라는 것"이라며 "이찬진 체제 초기에는 상징적 조직 격상이 먼저 나오겠지만, 몇 건의 제재 사례가 나온 뒤에는 결국 실질 권한과 책무를 어떻게 설계했는지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