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물 고정 조달보다 단기물 중심 유연한 차입 선호"
전단채로 금리 하락 반영·변동금리 비중 확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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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자 상장 리츠(부동산투자회사·REITs)들이 일제히 조달 전략을 바꾸고 있다. 장기 회사채 발행은 뒤로 미루고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등 단기물 중심으로 재편하는 모습이다. 표면적으로는 금리 변동성 확대에 따른 방어적 조달이지만, 배당 의무·담보인정비율(LTV) 등 업종 구조적 특성에 따른 필연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리츠의 경우 순이익에서 자기관리 리츠는 50%, 위탁관리 리츠와 기업구조조정 리츠는 90% 이상을 배당해야 한다. 조달금리가 오르면 금융비용이 곧바로 배당여력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또 LTV 관리도 필요하며, 리츠는 보유자산의 임대수익이 대부분 장기·고정 계약 형태라 금리 상승분을 임대료 인상으로 전가하기도 어렵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상장 리츠는 금리에 가장 민감한 업종 중 하나"라며 "최근처럼 금리가 빠르게 흔들리는 국면에선 장기물 고정 조달을 꺼리고 단기물 중심의 유연한 차입으로 이동하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주거 섹터 최대 상장리츠인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최근 전단채를 활용해 금리 하락을 빠르게 조달금리에 반영했다. 실제로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올해 3월 말에 최초로 전단채를 발행했다. 당시 전단채 발행금리는 4.3%였는데, 이후 6월 말 4.1%, 9월 말 3.9% 등의 순으로 하향 추세를 보였다.
전단채 자체 금리가 회사채보다 낮은 데다 금리 하락기의 속도감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10월말 기준 조달금리는 약 3.0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리츠의 투자운용을 담당하는 윤주원 이지스자산운용 상무는 "기준금리 하락이 즉시 조달금리에 반영되도록 전단채 활용 비중을 높였다"며 "(단기채는) 금리는 낮으나 차환 주기가 짧기 때문에 금융시장 변동성에 노출되는 점을 고려해 회사채와 전단채를 적절히 섞는 전략을 유지 중이다. 내년에도 금리 수준을 보며 병행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리츠의 경우 오는 2026년 1월 중으로 L7 홍대 호텔 편입 작업 딜 클로징을 앞두고 있다. L7 홍대 신규 편입을 위해 필요한 총 비용은 2807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대형 딜이지만, 담보대출과 단기채로 우선 자금을 맞춘 뒤 내년 이후 시장금리를 고려해 중장기 조달 구조를 다시 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LTV를 60% 이내로 유지하며 담보대출 1590억원, 단기채 1079억원, 임대료 1년분을 포함한 보증금 138억원 등으로 재원 조달안을 제시했다.
현준호 롯데AMC 리츠사업부문 부문장은 "최근 CD금리 급등세, 회사채 시장 불안, 기준금리 인하의 속도 조절 등을 고려했을 때 조금 더 보수적인 내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롯데리츠는 상장리츠 중 42%로 가장 낮은 LTV, AA- 등급을 보유한 곳으로 차입여력도 큰 편이다. 그는 "차입금은 연간 4000억~6000억원 규모로 계속 리파이낸싱이 반복된다"며 "금리 흐름이 출렁이는 시기에는 장기물 발행보다 단기물 활용이 운영 측면에서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화리츠는 조달 전략을 가장 대대적으로 손본 곳이다. 한화리츠는 지난해 한화그룹 사옥인 서울 장교빌딩을 신규 매입하기 위해 당시 시가총액을 뛰어넘는 473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해 시장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증가 규모가 컸던 만큼 주가 하락폭도 두드러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금리 구조 전환이다. 기존에는 고정금리 50%, 변동금리 50% 비중이었으나, 최근 변동금리 비중을 70%까지 높였다. 금리 인하 국면에서 금융비용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다. 또 2027년에 집중돼 있던 만기 구조도 분산시켰다. 리파이낸싱을 통해 만기를 2027~2028년으로 이원화했다.
한화리츠의 LTV는 현재 약 54%로 관리되고 있다. 최근 자산가치 평가금액 상승분(약 2800억원)이 반영되면 레버리지를 통해 4000억~5000억원 규모 신규 투자도 유상증자 없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유성국 한화자산운용 리츠투자본부 본부장은 "유상증자 충격을 누구보다 잘 알아 조달 구조를 전면 재검토했다"며 "유증 없이 성장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자금 조달 방법을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SK리츠는 SK텔레콤 판교 사옥인 SK-P타워 인수를 앞두고 있다. 총 투자비용은 3830억원 규모로, 담보차입과 전단채 발행, 자산매각을 통해 확보한 기보유 현금을 활용해 인수 재원을 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