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낮췄지만 그룹 계열사 간 현금이 오갔을 뿐
자본보충만으론 한계…지주사 ㈜효성도 출구전략 필요
개정상법下 계열 지원 쉽지 않아 다음 카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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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의 효성화학 수혈 부담이 계속된다. 햇수로 3년째인데, 내년에도 자원 투입이 계속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다음 지원 카드가 무엇이 될지 헤아려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3일 효성화학은 ㈜효성을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 후순위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사채 만기일은 발행 30년 후인 2055년 12월 3일이다. 효성화학의 부족한 유동성과 재무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자본으로 인정되는 영구 CB를 ㈜효성이 인수하는 구조다. 효성화학은 작년에도 두 차례나 같은 금액의 신종자본증권을 ㈜효성에 발행한 바 있다.
효성화학 재무위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효성 부담이 누적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효성의 효성화학 수혈 작업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계열 분리를 준비하던 2023년부터 본격화했다. 효성화학을 위시해 그룹 차원에서 추진한 베트남 프로젝트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당시 효성그룹은 베트남 투자를 지원한 신디케이트론 대주단에 재무개선 계획을 설파하는 동시에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자산 매각·유동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효성화학은 일차적으로 ㈜효성에 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되 외부에 사모 영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결국 ㈜효성의 부담이 됐다.
해가 바뀌며 삼불화질소(NF3) 사업부 매각 작업이 닻을 올렸고 기대 이상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매각 구조, 몸값을 둘러싸고 원매자와 협의가 길어지는 사이 전방 업황이 악화하며 최종 무산됐다. 만기를 앞둔 효성화학의 조 단위 차입금을 일시 해결할 수 있는 카드로 조명됐지만 기대 이하의 가격으로 그룹 계열사 효성티앤씨 품에 안기게 된다. 같은 기간 ㈜효성은 또 한차례 효성화학 영구채를 인수하고 반년 뒤 온산 탱크터미널 사업부도 1500억원에 양수받게 된다.
NF3 사업부 매각과 함께 추진된 현지법인 비나케미칼 지분 매각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초 현지 전략적 투자자(SI)를 포함해 여러 후보군이 오르내렸지만 업황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효성화학은 매각 대신 비나케미칼 지분 49%에 대한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체결했다. ㈜효성은 여기서도 3800억원 규모 자금보충 약정을 제공한다. 효성화학 스스로 PRS 정산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유사시에 ㈜효성이 책임지겠다고 우발채무를 떠안은 것이다.
지난 8월과 11월, ㈜효성이 추가로 제공한 자금보충 약정을 포함하면 올해 효성화학에서 발생한 우발채무만 7500억원이다. 그간 증자와 영구채, 사업부 인수에 내년 예정된 유형자산 매입까지 포함하면 ㈜효성 단독으로 지원한 총액만 약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 덕에 1만%까지 치솟았던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을 3분기 기준 310%까지 개선됐다. 그러나 회사 앞으로는 여전히 1조원 이상의 차입금이 남아 있다. 내년 2월부터는 먼저 발행한 2000억원 영구채의 스텝업도 순차로 돌아온다. 외부에서 유입된 자금 없이 그룹 내부에서만 돈이 돌고 돌았을 뿐 실질적인 재무개선 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열 내부 매각 대금으로 외부 차입금을 지주사에 대한 채무로 교체한 것에 가깝다는 얘기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앞서 발행한 2000억 영구채들의 표면이자율이 각각 8.3%인데, 내년 2월과 9월에 각각 3.5%포인트씩 스텝업 된다"라며 "전방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면서 NF3가 그룹 외부로 팔려나가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란 시각도 있었지만, 효성화학 현금흐름은 더 나빠졌으니 ㈜효성 허리가 갈수록 휘는 구조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지주사 ㈜효성이 계열 유동성 위기를 지원하는 것 자체는 문제 삼기 어렵지만 수혈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느냐 우려가 만만치 않다. 효성화학 본업이 언제 정상화할지 알기 어려운 만큼 지원 명분이 점점 흐릿해진다는 것이다. NF3나 비나케미칼, 터미널 외 다른 사업부 매각도 검토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 외형이 자꾸 줄어드는 것도 부담이란 평이다.
다음 카드가 무엇일까 하는 시선도 있다. 그룹 차원에서도 ㈜효성의 자원을 무한정 투입하기보다는 출구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으로 그룹 내에서 현금을 주고받기 까다로워진 탓에 종전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SK그룹처럼 모회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을 효성화학에 합병시켜주는 방법도 있지만 ㈜효성 아래 그런 사업장이 잘 안 보인다"라며 "연초랑 달리 이제는 지주 아래 수평 관계에 있는 상장 계열사가 동원되면 배임 논리를 적용하기 쉬워져서 출구전략 짜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