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 된 레드바이오…CJ제일제당, 네덜란드 CDMO 바타비아 청산 가닥
입력 2025.12.08 07:00
    레드바이오 실적·업황 모두 악화
    매각 검토하다 청산 선회
    재무부담 가중 속 신규사업 부담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CJ그룹이 CJ헬스케어 매각 이후 야심차게 도전했던 제약·의료(레드바이오) 부문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만큼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연달아 정리하는 모습이다. 다만 재편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사업 일부는 조직을 개편해 다른 부문과 시너지를 낼 방안을 고심하고 있으나, 몇몇은 매각조차 어려워 청산을 검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위탁개발생산(CDMO) 계열사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의 청산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의 원매자를 찾으려 했으나, 매각이 어려워지며 청산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CGT 시장이 고꾸라지면서 제품을 생산하는 CDMO 업체 실적도 타격을 입은 점이 청산 검토의 배경으로 꼽힌다. 수년 내 업황이 회복할 기미도 보이지 않자 사실상 사업을 접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는 CJ그룹이 지난 2021년 2700억원에 인수한 네덜란드 CDMO 기업이다. 인수 당시만 해도 레드바이오 부문에 쏟을 자금 확보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됐다. CJ그룹은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하기 직전 신약 개발 기업인 CJ바이오사이언스(옛 천랩)를 품에 안았는데, 신약 연구개발(R&D) 비용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CDMO 업체인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R&D 자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CJ그룹이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한 이후 당초 생산계획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공장에서 물질을 바로 생산하려면 추가 투자가 필요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의 수익성도 개선세를 보이지 않자 매각을 비롯한 여러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보여진다. CJ제일제당에서 글로벌 인수합병(M&A) 업무를 이끈 창 킴(Chang Kim) 담당이 지난해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CJ그룹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 청산은 이전부터 논의됐다"라며 "(네덜란드 공장에서) 바이럴 벡터(치료제 제조 물질)를 바로 생산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사실상 어려웠던 상황이라 추가적인 지출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수 당시에는 CGT가 유망했지만 현재는 시장이 살아나기 어려워졌다"라며 "매각을 고려해도 사실상 원매자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룹의 다른 레드바이오 사업 부문인 CJ바이오사이언스는 신약 외 다른 사업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올해 선임된 윤상배 신임 대표가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CJ웰케어 대표를 겸임하며 CJ바이오사이언스의 사업 다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윤상배 대표가 헬스케어 분야 영업·판매에 강점이 있는 만큼 그룹이 CJ바이오사이언스, CJ웰케어의 실적 개선을 주문했을 공산이 크다. 두 기업 모두 수익성 개선이라는 숙제를 안은 계열사들이다.

      당장 CJ바이오사이언스는 CJ그룹 인수 이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약 개발 기업 특성상 적자 구조를 감안해야 한다면,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사업 역량을 갖춰야 한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장내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에 특화한 강점을 살려 데이터베이스(DB) 제공, 분석,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몇억원에 그치는 매출로 상당한 적자를 메우기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핵심 사업인 신약 개발을 포기할 순 없기 때문에 R&D 비용 부담은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초기 단계 물질을 개발하고 있어 매년 200억원 정도의 R&D 비용을 부담한다. 통상 R&D 비용에 박사 인력의 인건비용이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R&D 인력 이탈 혹은 조직 개편이 없는 이상 비용을 크게 줄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CJ바이오사이언스의 보유 물질 중 임상 단계에 진입한 것은 하나뿐이라 포트폴리오 확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레드바이오 부문이 그룹의 골칫거리가 됐다는 시선도 많다. CJ그룹의 핵심 사업인 식품과 유통(물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부문들도 실적 개선과 자산 매각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사업인 바이오 부문에 대단한 투자를 단행할 여력도, 사업을 정리할 결단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너 2~3세가 바이오 부문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다른 그룹과 달리 CJ그룹에서는 오너 일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다.

      CJ그룹이 레드바이오 사업을 정리한다면 사실상 제약사업 재진출에선 뚜렷한 결과물을 얻지 못한 셈이다. CJ그룹은 제약사업부문인 CJ헬스케어를 한국콜마에 매각했다, 바이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다시 점찍고 CJ바이오사이언스,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를 연달아 인수했다. 하지만 두 기업을 인수한 지 5년째 되는 현재, 사실상 자력 생존이 어려운 데다 그룹이 추가적인 투자를 추진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