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를 짝사랑한 대가는…국민연금은 과연 선의의 피해자일까?
입력 2025.12.09 07:00
    Invest Column
    홈플러스 M&A에 공개적·선제적 앞장선 국민연금
    MBK에 뒤통수 맞은 국민연금?…투자금 회수도 요원
    RCPS 상환조건 변경에는 “동의 안했다”
    MBK 경영권 분쟁 논란 속에서도 위탁사 선정 강행
    출자 확정 6개월만에 금감원 제재 시작되자 “회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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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전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전세계 어느나라든 이사장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빈급의 대접을 받고, 실제로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역시 국민연금을 빼놓곤 설명이 어려운데 국민연금은 주요 대기업들의 대주주, 금융 기관들의 최대 투자자 그리고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자금의 원천이다. 

      그런 국민연금이 최근 그 위상에 걸맞지 않은 논란에 휩쌓여 있다.

      올 해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돌입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사실상 국민연금이다. 수 천억원에 달하는 홈플러스에 직접 투자한 자금의 회수 가능성은 예단하기도 힘들고, 이미 MBK를 위탁사로 선정해 3000억원의 출자를 약정해놓은터라 법적으로 돌려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MBK의 책임론에 불이 붙었고, 최근엔 금융감독원이 앞장서 제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돈을 맡긴 국민연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하는 형국이다.

      홈플러스 경영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1차적인 책임이 MBK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MBK의 책임론을 차치하고,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가 앞으로의 MBK의 활동에 실질적인 제약이 될 것인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MBK 출자기관(LP)의 80% 이상은 해외 연기금과 금융기관들로 구성돼 있다. 8조원이 넘는 펀드에 국민연금을 비롯한 우리나라 기관들의 자금은 5% 수준도 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투자 수익률을 한국을 압도한다. 이미 펀드 결성을 마친 상황에서 6개월 펀드레이징이 금지되는 금융당국의 직무정지란 고강도 제재를 받는다한들 투자 활동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금융당국의 제재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LP들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점은 감수해야한다. 물론 수 년뒤 펀드의 수익률이 양호하다면, MBK 이력에 금이 가는 수준의 헤프닝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MBK는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 자금을 모으고 투자 활동을 이어가는 대신, 일본을 비롯한 팬 아시아권으로 시야를 더 넓힐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MBK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KKR·TPG·칼라일·어피너티 등과 같이 해외에서 자금을 모으고, 한국을 아시아 국가의 작은 투자처로서만 여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출자자들이 MBK 펀드에 큰 손도 아닐뿐더러, 사법·정책·환율·지정학적 리스크를 모두 감수하면서까지 한국 시장에 주력할 유인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MBK가 글로벌 유수의 펀드들과 견주어 눈에 띄는 자본력과 인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MBK에 국민연금은 어떤 존재였을까? 

      펀드의 5% 남짓 자금(약 3000억원)을 댄 국민연금은 애초부터 수 십곳의 LP들의 가운데 하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MBK와 국민연금의 인연은 약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연금은 2011년 MBK가 조성한 팬아시아펀드에 약 1800억원을 출자해 상당한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파악된다. MBK는 국민연금이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즉 높은 수익률을 안겨준 수시출자 대상 운용사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2015년 홈플러스 인수전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선제적이고 또 적극적으로 대규모 자금 투입을 결정하면서 빅딜이 너무도 필요했던 MBK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MBK는 역대 최대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지만, 소진률이 높지 않았던터라 대형딜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ING생명, 네파, APEX로지스틱스(중국) 등 굵직한 딜에 3호 펀드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그 규모는 미미했다. 또 중국, 일본과 비교해 본토인 한국에서의 수익률이 다소 떨어지는 시점이기도 했다.

      마이클의 친정집 칼라일, 한국인 헤드가 자리잡고 있는 KKR, 창립이래 단 한번의 투자 실패가 없었던 전설적인 운용사 어피너티 등과 수시로 비교 당했지만, MBK만 두고 본다면 이렇다 할 랜드마크 거래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역시 MBK가 2009년 OB맥주 인수전에서 KKR-어피너티 연합에 고배를 마셨던 전례를 빼놓을 순 없는데, 아직도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 M&A로 남아있는 홈플러스 딜은 MBK와 마이클 회장의 자존심을 회복하는데 가장 주효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MBK의 홈플러스 경영권 인수가 가능했던 건 국민연금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매각 당시 특정후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려했던 국민연금은 형평성을 비롯한 각종 논란 속에 한동안 M&A에서 특정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전무했다. 

      이런 국민연금의 원칙을 깬 시점이 바로 홈플러스 거래가 등장한 2015년이다. 국민연금은 선제적이고, 또 공개적으로 MBK를 지지하며 메자닌 투자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투자 집행이 이뤄졌다. 형평성 논란, 테스코의 먹튀 논란 등 각종 이슈들이 불거졌지만 MBK의 빅딜 이후 한동안 잊혀져 있던 홈플러스의 투자는 10년이 지난 뒤 법정관리란 결과물로 돌아왔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이 투자한 RCPS는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홈플러스가 회생에 돌입하기 전, SPC(한국리테일투자)가 보유한 RCPS 상환조건이 변경됐다. 이와 관련해 MBK는 "홈플러스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RCPS를 회계상 부채에서 자본으로 전환해 부채비율이 대폭 개선됐지만 결국 회생절차를 막진 못했다.

      MBK의 최근 해명과 같이 SPC-홈플러스 간 RCPS 상환조건의 변경은 국민연금이 SPC에 투자한 RCPS와는 무관하다. 실제로 국민연금 자금에 대한 상환조건도 변경되지 않았다. MBK 역시 국민연금 측에 SPC의 홈플러스 RCPS에 상환조건 변경에 대해 동의 받을 의무도 없었다.

      다만 국민연금이 MBK와 홈플러스의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보인다. 홈플러스에 대한 최대투자자로서, SPC 투자처의 상환 조건이 바뀐단 점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통보를 받고 조치를 취할만한 창구 또는 국민연금의 의지가 있었느냐의 문제로 귀결한다. 

      LP로서 운용사의 경영 개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수천억원의 자금을 맡긴 최대투자자가 아무런 조치도 못한채 사후에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과연 합리적인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이후 "홈플러스의 RCPS가 부채에서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 바 없다"며 "투자원금(5826억원) 가운데 3131억원을 배당으로 회수했다"고 설명했다. 받은 돈보다 앞으로 받아야 할 돈이 더 많지만, 회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국민연금이 홈플러스 상환조건 변경을 통보받았든, 반대로 인지하지 못했든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돌입으로 인한 유무형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연금이 지게 됐다. 회생절차 돌입 직후 국민연금 투자금 회수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하며 실무진들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질의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사고는 MBK가 냈지만, 수습은 국민연금이 해야하는 상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의 눈밖에 나면 사실상 1원 한장 받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십 수년간 한국에 뿌리를 내린 조단위를 굴리는 국내 대형사들도 국민연금의 정성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출자사업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홈플러스 논란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MBK가 우리나라 각 기관들의 컨테스트에 등장했다. 5호펀드의 자금을 막 모으기 시작했지만,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심화하며 해외 펀드레이징이 어렵단 이야기가 돌던 시점이었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란 말이 무색하게 MBK는 방폐기금과 같은 소형 출자사업에도 기웃거리며 눈총을 받았는데, 결국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국민연금 역시 물론 홈플러스 사태를 예견하지도 못했을 시점이었던 점은 인정해야한다. MBK의 위탁사 선정 배경에 과거 펀드(1호 팬아시아, 3호 블라인드)의 양호한 수익률이 한 몫 했을 것이란 추정은 가능하다.

      MBK가 국내 펀드레이징에 심혈을 기울이던 지난해엔 한국타이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MBK는 SS를 통해 한국타이어에 대한 공세가 한차례 실패한 이후, 지난해 말부턴 고려아연에 대한 분쟁에 불을 붙였다. 이즈음부터 과연 국민연금의 자금이 MBK에 투입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이 시작됐다. 

      다행히(?) 지난해 7월 위탁운용사를 선정한 이후에도 수 개월째 국민연금과 MBK는 정관에 날인을 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통상적으로 2~3개월 내에 위탁운용사 계약을 체결하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적으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숙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사태가 발발한 직후 "최종적으로 국민연금은 적대적 인수합병 투자 건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해 올해 2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각종 논란을 무릅쓰고, 결국 MBK를 위탁운용사로 최종 선정한지 불과 반년이 지나지 않아 MBK에 대한 투자금 회수를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MBK에 대한 직무정지를 포함한 중징계를 예고하자 국민연금은 공고상 위탁운용사 선정과정 취소 규정을 근거로 "출자금 회수와 관련한 법적인 검토를 진행중이다"고 했다.

      일단 국민연금과 MBK의 펀드 정관에는 별도의 출자금 회수 조항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에서도 GP에 책임을 물어 LP가 출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LP들의 전원 동의로 GP를 교체하는 사례는 종종 있지만, 해외 LP가 대부분인 MBK의 경우엔 사실상 적용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자금 회수가 현실화한다면, 자칫 해외 LP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고 또 MBK는 소송을 고려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만 따져본다면, 국민연금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기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 보인다.

      MBK가 과연 국민연금이 이 같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출자를 확약할만한 대체 불가능한 성과를 낸 운용사일까?  KKR, TPG, 칼라일 등 국적이 해외로 분류되는 운용사들과 달리 MBK는 국내 운용사들과 컨테스트 경쟁을 치른다. 과거 1~3호 펀드 수익률이 양호하지만 우리나라 다른 운용사들을 앞설만한 성적을 거두지도 못했다. 다만 체급만큼은 우리나라 운용사 모두를 압도한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대형사, 즉 수천억원씩을 거뜬히 소화해줄 대마(大馬)가 필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매년 운용해야할 기금이 쌓여가는 탓에 이를 굵직하게 소진해 줄 운용사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홈플러스에 앞장서 돈을 넣은 것도,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던 MBK가 출자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위탁사로 선정해 덜컥 자금을 맡긴 것도 결국엔 국민연금의 결정이었다.

      정풍(政風)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처지, 국정감사와 연말 인사시즌 마다 어수선한 분위기, 내부 임직원들의 처우와 사기의 문제 등 국민연금의 사정을 말하자면 끝도 없다. 다만 이제까지 '국민연금'이란 이름값으로 무사안일(無事安逸)의 기조가 팽배했단 비판도 일정 부분 감수해야한다. 

      국민연금이 과연 선의(?)의 피해자일까? 국민연금은 지금 MBK에 대한 짝사랑(?)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뒤늦은 후회로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얼만큼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낳을진 좀 더 지켜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