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이라 자처하던 쿠팡의 허술한 정보관리
이커머스 기업들 덩달아 '긴장'…구조적 취약성
혼돈의 유통업…신세계는 '오프라인' 강화 모습
가장 트렌드 민감한 유통…투자업계 향방도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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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커머스 1위인 쿠팡이 초유의 고객 정보유출 사태로 뒤숭숭하다. 올해 잇따른 정보유출 사고에 소비자들의 우려가 쌓여가는 가운데, ‘쿠팡마저’ 취약한 정보 관리 수준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실망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쿠팡의 위기로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도 있으나, 정작 업계 내부에서는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앞선다. 이커머스 업체를 비롯한 주요 유통사들은 보안 시스템 점검을 강화하며 비상 모드에 돌입한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이커머스 산업이 구조적으로 지닌 취약성을 다시 확인시켰다는 평가다. 이커머스 기업은 고객 결제·주소·구매이력 등 방대한 데이터를 단일 플랫폼에 집중해 보관하는 특성상,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된다. 낮은 마진 구조로 인해 성장 투자에 자원이 우선 배분되며 보안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는 관행, 빠른 서비스 확장 과정에서 누적된 기술 부채(Tech Debt) 역시 위험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소비자들의 결제카드 저장 등 편의성 중심의 사용 패턴도 리스크를 증폭시킨다. CVC 등 민감 정보가 유출될 경우 금융 사고로 번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당장은 대규모 이탈 조짐이 나타나지 않지만, 쿠팡이 흔들릴 경우 소비자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노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겉으로는 충성도 기반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탈출 장벽’이 낮은 산업 구조라는 의미다.
이커머스 중심의 시장 구도가 흔들리는 가운데 국내 유통 대기업들은 오프라인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하는 흐름도 포착된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24 플래그십 ‘트렌드랩 성수점’을 열고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브랜드 팝업과 IP 굿즈 등 '테스트베드'식 상품 콘텐츠를 강화했다. 또한 파주 운정신도시에 ‘스타필드 빌리지’ 1호점을 오픈하며 지역 밀착형 복합몰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 기능을 결합한 지역 밀착형 쇼핑몰로, 기존 스타필드와 달리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되는 주상복합형 구조다.
신세계프라퍼티는 2030년까지 약 13조원을 투자해 다양한 형태의 복합몰을 개발할 계획이며, 스타필드 브랜드를 기능과 입지에 따라 마켓·시티·애비뉴·빌리지 등으로 세분화해 운영한다. 아파트 단지와 직접 연결되는 커뮤니티형 쇼핑몰 모델도 실험하며 차별화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국내 대형 유통사의 대규모 투자가 다소 주춤한 가운데, 신세계그룹은 투자업계와의 접촉을 이어가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이끄는 벤처캐피탈(VC) 1789캐피탈 역시 국내 투자처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의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지며, 투자 방향성이 그룹 전략과 맞물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유경 회장이 이끄는 백화점 부문도 면세·뷰티 사업 강화와 관련해 투자업체들과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K-뷰티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면서 정 회장이 뷰티 사업 강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유통업 전반에서는 생활 반경과 소비 트렌드 변화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빨라지면서 “영원한 1위도, 영원한 경쟁자도 없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올리브영의 경쟁자는 다이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접근성이 뛰어난 채널에서의 소비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고전하는 유통사 상당수는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며 “트렌드 변화가 가장 빠른 업종인 만큼, 결국 큰 방향성 아래 누가 더 기민하게 움직이며 투자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