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는 물류 이관하려 하지만
CJ는 유동화·재무부담 탓에 '멈칫'
보통주 투자 및 마스터리스 구조는
兆단위 물량 인수엔 부담스러워
공전시 반쿠팡 전선 동력 상실 우려
-
쿠팡발(發) 악재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며 온라인 유통사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충성도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자 네이버·SSG닷컴·11번가 등이 모객을 강화하고 있고, 주식시장에서는 CJ대한통운이 즉각적인 반사수요 기대를 받으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그런데 시장이 기대했던 '반(反)쿠팡 연합'의 핵심 축인 신세계와 CJ 간 물류 재편은 지난해부터 사실상 진전이 멈춘 상태다. 신세계그룹은 핵심 자동화센터까지 CJ에 넘기며 전방위 협력을 이행했지만, 정작 CJ는 보통주 투자 구조 부담으로 추가 유동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세계와 알리바바와의 합작 시나리오도 1년 넘게 교착 상태다.
SSG닷컴은 김포 자동화센터 '네오003'을 비롯한 핵심 물류 역량을 CJ대한통운에 단계적으로 이관하기로 했다. 기존 새벽배송 및 주간배송의 주요 프로세스를 CJ가 전담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내용이 골자다. 신세계그룹은 물류 자산을 직접 보유·운영하기보다는, 도심 온라인물류센터(PP센터) 중심의 라스트마일 최적화 모델로 방향을 바꿀 계획이다.
네오003은 올해 6월 1528억원에 이관이 완료됐다. SSG닷컴 입장에서는 고정비를 줄이고 물류 투자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컸다. 내부적으로 "물류는 CJ에 맡기고 플랫폼 경쟁력에 집중한다"는 기조가 유지됐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전방위 협력'의 절반을 실행한 상태라는 의미다.
문제는 그 이후의 구조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신세계그룹의 물류센터를 유동화하면서, 보통주 10% 규모를 투자하기로 했다. 운영 주체로서 수익 배분과 시설 사용권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시장에서는 해당 구조를 조 단위 규모의 신세계 물류센터까지 확대 적용하기에는 재무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중에서도 세일앤리즈백(SLB)은 단순 매각이 아닌 부채성 리스부담을 비롯, 자기자본(PI) 투자까지 동반되는 구조다.
최근 투자자들은 책임임차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며 금리를 높게 요구하고 있다. 금리와 리스료가 함께 부풀어오르는 환경에서 CJ그룹이 추가로 신세계 물량까지 태우려면 운영비와 재무비용이 동반 상승하게 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CJ가 SLB를 진행하려면 보통주 10% 추가 투자 및 마스터리스 연장이 필수인데, 지금의 CJ그룹 등급 및 자금 사정으로는 부담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CJ그룹이 신세계의 물량을 전부 흡수하기 어렵다는 평가의 배경에는 그룹 전반의 재무 여력 축소가 자리한다. CJ 지주사의 현금성 자산은 약 1100억원 수준. 계열 지원은 사실상 10년 가까이 추진되지 않았다. 그룹의 구조조정 방향이 '자회사 개별 생존'에 가깝게 맞춰지면서, 추가 부담을 떠안기 어려운 체력이라는 분석이 많다.
CJ ENM은 부채비율 150%대로 3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고, 유동성 방어를 위해 콘텐츠·부동산 자산 매각을 이어가고 있다. CJ제일제당 역시 비핵심 해외·부동산 매각을 통해 현금을 방어하는 단계다. 식품·바이오 전반의 수익성이 예상보다 더디게 개선되면서 그룹 전체로 확산되는 부담이 커졌다.
투자자들의 시각도 냉담하다. 최근 들어 물류센터는 투자자에게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대신, 리스크가 큰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CJ그룹이 신세계 물류센터를 모두 이관받더라도, 유동화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방위 협력의 재무적 연계 고리가 막힌 셈이다.
당초 신세계는 CJ와의 협력을 통해 물류 고정비 절감, 설비투자(CAPEX) 최소화, 효율 최적화를 기대했다. 실제 이관 초기에는 운영 효율 개선 효과가 있었다는 내부 평가도 나왔다. 다만 올해 들어 배송 지연·오배송·주문 취소 증가 등 품질 이슈가 반복되면서, "협력 전환이 서비스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 대형 유통사 임원은 "쿠팡을 견제하기 위한 연합 전략이 오히려 양사의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다"며 "신세계는 브랜드 타격 우려, CJ는 재무 부담이 커지면서 득보다 실이 커지는 구도"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의 물밑 합병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알리바바가 국내 물류센터 개발·운영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기조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정작 신세계그룹이 매각을 검토했던 수도권급 대형센터 패키지를 두고서는 가격 간극과 공동투자 구조 등이 얽혀 있어 구체적 협의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알리바바가 참여해야 구조가 완성되는데, SSG–CJ 구도가 정리되지 않으니 알리도 움직일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쿠팡 사태로 네이버는 컬리N마트 거래액 급증, CJ대한통운은 주가 신고가 등 반사수요 시그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물류 인프라 단위의 구조 개편은 1년 넘게 제자리여서 시장의 기대와 실제 실행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업계가 '반쿠팡 전선'으로 기대했던 그림은, 실제 구조·재무 여건으로는 구현이 어려운 시나리오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