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넘치던 외국인 엘리트 집단
만만하게 본 한국시장서 불명예 퇴역할판
칼라일과 MBK는 대체 뭐가 달랐길래
돈 대주고 목소리도 못낸 국민연금
"MBK가 밉다"…내년부터 후폭풍에 시달릴 운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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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우리나라 자본시장 단 하나의 주인공(?)을 꼽자면 단연 MBK파트너스이다. 아시아권 최대 사모펀드(PEF)이자, 한 때는 KKR, TPG, 칼라일 등 글로벌 운용사들의 아성(牙城)을 넘보던 MBK파트너스는 이제는 정치권과 금융당국 그리고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뭇매를 맞는 처지가 됐다.
PEF 운용사가 모든 포트폴리오에서 성공을 거둘수 없듯 몇몇의 실패는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는게 현실이지만 MBK는 이미 한국 사업의 존폐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마트와 소상공인 등 우리나라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린 홈플러스 사태는 자본시장의 트라우마와 같은 동양사태를 상기시켰고,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는 점에서 단순한 PEF 투자 실패를 넘어선 사례로 기록됐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홈플러스 사태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MBK 오너와 핵심 인사들의 초호화 생활, 실패한 용병술 그리고 과거 투자 실패 사례까지 회자했는데, 자본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MBK가 한국시장에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진 미지수란 평가가 나온다.
MBK파트너스는 말 그대로 창업주인 김병주 회장의 영문명에서 딴 약자이다. 글로벌로 확장하면 KKR, 골드만삭스, 워버핀커스, 토마브라보 등이 모두 창업자의 이름을 딴 운용사들인데 우리나라에선 사례를 찾아보기 쉽진 않다. 사실 김 회장은 본인의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offerings)을 낼 정도로 자기애(?)가 강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김 회장이 사모펀드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성과를 거둔 인물이란 점도 일견 인정해야한다. 김병주 회장은 칼라일에 아시아 헤드로 근무할 당시, 한미은행 인수와 경영권 매각(2000년~2004년)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2005년 MBK파트너스를 설립했고, 테마섹(Temasek)과 캐나다 공공연금투자위원회(CPPIB)으로부터 약 16억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한국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친정집 칼라일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회장을 떠나 보낸(?) 칼라일은 이후 한국 시장에서 한동안 부진했는데, 눈에 띄는 투자가 없었을뿐 아니라 투자 실패(현대HCN, 약진통상) 사례가 쌓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MBK 출범과 맞물린 칼라일의 투자 실패를 김 회장의 탓으로 치부하긴 어렵지만, 칼라일 내부에선 여전히 '마이클(Michel)'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 될 정도로 반감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덧 아시아 최대 펀드로 성장한 MBK를 언급하는 세간의 평가엔 '오만함(arrogant)'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 수년 간은 엘리트 집단 특유의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비쳐질 만한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고려아연 사태는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MBK를 다시금 투자자들에게 각인 시키는 계기였다. 현직인 최윤범 회장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 분쟁은 한국 시장에 상륙한지 20년이 되는 사모펀드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MBK는 이미 수년 전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며 재계에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었는데, 고려아연 분쟁으로 MBK가 재계와 대척점에 서겠단 스탠스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MBK는 법원의 손발을 묶어두려는 작업을 한다던지, 상대방에 대한 위법성 논란을 사전에 꺼내는 등 투자자들의 입장에선 '적대적(Hostile)' 스탠스로 밖에 여길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 다소 과격하고 공세적인 태도가 도마위에 올랐다. 홈플러스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제적으로 주식을 소각하며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는 외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반박했하며 마치 '희생자' 또는 '순교자'와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길 원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를두고 '재계에 경종을 울리겠다' 또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한국 시장에 이식하겠다'는 김 회장의 강한 의지의 표출이란 시각도 있었지만, 자칫 오만함으로 비쳐질만한 행보들에 불편감을 느낀 투자자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MBK 내부적으로도 점차 흑화(?)하는 김 회장에 반감을 가진 인물도 있었는데, 실제로 파트너급 인사가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과연 MBK가 업계를 선도할만한 지위를 가졌는지, 또는 한국 PEF 시장에 선구자가 될 만한 역할을 충실히 했었는지는 미지수다. 김병주 회장 스스론 유명세를 탄 인물이었으나 MBK가 한국 시장에 펀드를 런칭했을 당시만해도 글로벌 펀드들과 비교해 주목받는 수준은 당연히 아니었다.
MBK가 한국시장에 등장할 즈음엔 H&Q코리아,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그리고 보고펀드 등이 생겨났는데, 보고펀드와 같은 토종 펀드의 위상과 비교해도 MBK가 압도적이었다고 보긴어렵다.
물론 MBK는 최초 해외 유수의 연기금들로부터 마이클의 이름 값으로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규모면에선 추종을 불허했지만 막상 수익률을 보면 한국 시장에서 다른 운용사들을 앞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시장에서 회자되는 성공적인 투자 사례 ING생명, 코웨이 등 몇몇을 제외하면,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서의 성과가 훨씬 두드러진다. 오히려 한국에선 영화엔지니어링 법정관리 사태, 여전히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네파, 기어코 법원의 관리를 받고 있는 홈플러스 등 아픈 손가락이 더 주목받았다.
해외에서의 MBK의 성공적인 투자가 한국 투자자, 즉 LP들에게 귀속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펀드의 90% 이상이 해외투자자인 점을 고려하면 MBK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몇몇의 파트너들과 캐나다, 북미, 중국 등 일부 해외 LP들만의 것이다.
사실 잊을만하면 제기되는 MBK의 국적과 세금 논란은 "과연 MBK를 토종 펀드와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해도 되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미국 다이얼캐피탈(Dyal Capital)은 MBK파트너스의 지분 13%를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전후로 MBK의 주주 구성이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 법인 구성(김병주 회장·김광일·윤종하 부회장)만 공개됐을뿐 실질적인 지배구조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K는 글로벌 운용사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LP들에 극진한(?) 예우를 받아왔다.
칼라일은 한미은행, ADT캡스 등 메가딜을 성사할때마다 먹튀논란에 시달려야했다. 사실 먹튀 논란에 시달렸던 칼라일과, 미국인이자 칼라일 출신인 마이클 회장(부재훈 부회장 포함)이 이끄는 MBK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찾긴 어렵다. 늘 MBK와 비교되던 어피너티는 아직도 그 근간이 "홍콩이냐, 중국이냐" 논란에 휩쌓여 있다. 어피너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박영택 전 회장은 세금 문제로 우리나라에 편하게 드나들지도 못했는데, 그에 비하면 미국인 김병주 회장의 운신의 폭이 상당히 넓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우리나라 주요 LP들 역시 MBK에 대해선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 운용사들이 경쟁하는 콘테스트에 리즈널펀드인 MBK의 참여 제한도 없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를 두고 KKR-어피너피 연합과 경쟁하던 MBK를 선제적으로 지지하며 딜을 성사시킨 주역이었다. 2019년 시가총액 15조원에 달하는 넥슨의 M&A 추진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은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MBK에 자금을 대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거래가 무산되며 MBK를 지지한 국민연금은 무색한 상황이 돼버렸다. 앞으로 MBK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란 전망과 달리, 국민연금은 고려아연과 홈플러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MBK에 3000억원의 블라인드펀드 자금 출자를 결정했다. 그런 국민연금은 과 6개월만에, MBK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법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현행법보다 앞서는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들에 금융당국이 앞장서 칼을 휘두르는 형국에서 MBK에 대한 법적인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물론 MBK에 대한 제재가 확정되더라도 MBK의 활동에 얼마나 제약이 있을진 미지수다. 이미 8조원이 훌쩍넘는 펀드를 결성한 상황. 이미 MBK는 한국보다 해외로, 특히 일본으로 그 중심축을 옮기고 있는 모습도 나타난다.
물론 MBK가 한국을 떠난다 한들, 우리나라 PEF업계 또는 자본시장에 여파가 있을진 미지수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MBK가 만들어낸 후폭풍은 고스란히 선량한(?) 운용사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PEF를 타깃으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내년부터 줄줄이 국회에 상정되고,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유무형의 압박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매일같이 금융당국의 눈치를 살피며, 1원 한장 숨길 수 없이 꼬박꼬박 한국에 세금을 내는 다수의 PEF 운용사들 입장에선 검은머리 외국인 집합체인 MBK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