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흔든 '이재명노믹스', 지금까진 예고편...'자본의 법칙' 바뀔 2026년
입력 2025.12.11 07:00
    올해 국회 통과 신규 규제, 내년부터 차례차례 시행
    '자사주 의무 소각' 예고에 하반기 EB 발행 폭증
    집중투표제ㆍ전자주주총회 의무화에 주총 대혼란 예고
    의무공개매수제 "상장사 M&A 씨 말릴 것" 우려
    • "올 하반기엔 교환사채(EB)와 주가수익스왑(PRS) 영업 다닌 기억밖에 없네요. 보통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부서장)

      올해 교환사채(EB) 발행규모는 9일까지 4조515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발행금액(1조9870억원)을 두 배 이상 넘어섰다. 전체 124건 중 103건, 3조4000억원 규모 발행이 현 정부가 출범한 6월 이후 집중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 규제가 실제로 법제화될 조짐이 보이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 사이 자본시장은 이전 6년간은 비교도 안되는 큰 변화에 마주했다. '이재명노믹스'로 통칭되는 산업ㆍ기업 관련 정책들이 차례차례 입법되며, 경제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움직이는 '자본의 법칙' 자체가 뒤집혔다는 평가다.

      문제는 지금의 변화가 '서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1차 상법 개정안, 8월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9월의 2차 상법 개정안, 법인세율 인상을 담은 세법 개정안 등 이재명노믹스의 핵심 제도들은 대부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의무공개매수제 등 더욱 민감한 내용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역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연내 통과ㆍ내년 시행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대비'를 위한 기업들의 한 발 앞선 움직임만으로도 올해 자본시장의 판도는 크게 흔들렸다. 올해 국회를 통과한 법안들이 내년 본격 시행되면 '운영'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지며 한동안 혼란한 분위기가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2027년 집중투표제ㆍ전자주총 의무화...'대격변' 예고

      이재명노믹스를 대표하는 정책은 '상법 개정'이다. 정부 출범 후 처음 국회를 통과한 지난 7월의 1차 상법 개정안은 다분히 '선언적 의미'의 개정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해당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사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내년 9월 시행)로 바꾸며,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룰'을 확대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실질적으로 부담이 되는 규제라기보단 일종의 '방향성' 제시로 평가된다.

      9월의 2차 상법 개정안부터 본격적인 '구조 개편'이 시작됐다. 2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집중투표제였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 이사 선임시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 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소수주주 추천 이사의 이사회 진입 확률을 크게 높여줄 수 있는 제도다.

      내년 9월부터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1% 이상 주주의 청구시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국내 상장사 이사회에 주주 추천 이사나 노동조합 추천 이사가 진입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내년 9월 이후엔 이사회 내 역학구조가 기존과 완전히 다르게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2027년 1월부터는 집중투표제에 더해 전자주주총회 병행 개최도 의무화되며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극대화되는 '대격변'이 예상된다"며 "소수주주 추천 이사의 이사회 진입을 전제로 이사회 운영 방향을 점검해야 하고, 주총 전 안건 협의와 설득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더 센' 3차 상법 개정안 온다...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끌'

      이전 상법 개정안이 이사회 및 주주총회 등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집중했다면, 3차 상법 개정안은 자본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규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 초안엔 기보유중인 자사주의 경우 1년6개월, 신규 취득한 자사주의 경우 1년 안에 의무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 시행 이후엔 자사주를 교환ㆍ상환ㆍ질권(담보)의 대상으로도 할 수 없어진다. 소각 대신 처분 시엔 주총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여당 일각에선 해당 개정안의 연내 통과ㆍ내년 1월1일 시행을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올 하반기 서둘러 EB와 PRS등으로 유동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자사주 교환으로 '동맹'을 맺은 미래에셋-네이버의 사례나 자사주 교부로 현대증권 인수 부담을 크게 낮춘 KB금융지주의 사례는 개정안 통과 이후엔 '불법'이 된다"며 "SK하이닉스가 자사주 기반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할 수도 있다는 '전망'만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보면 '건설적 활용'에 대한 여지는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장사 M&A 하지 말란 말"...의무공개제도, 기준 '상향 논의'

      의무공개매수제도 역시 이슈다. 해당 법안은 상장사 경영권 양수도 거래에서 소수주주들의 지분을 의무적으로 공개매수해야 하고, 그 가격 역시 시행령으로 강제하는 가격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벌써부터 "상장사는 M&A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소리"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그나마 부담이 최소화되는 '50%+1주'(금융위 제안)안을 지지했지만, 정부와 여당에서 소수주주 보호를 위해 의무공개매수 비율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며 현 시점에서 전망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강훈식 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취득할 경우 잔여주식 전량(100%)을 인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던 바 있다.

      해당 법안 관련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뉴스레터를 통해 "상장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추가 자금 부담에 더해, 공개매수 등 절차적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라며 "전략적 인수·합병 및 지배구조 개편 거래를 추진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규제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에게 그나마 유리한 법안은 상법 개정안의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정도인데, 이미 보수보다 책임이 크게 늘었다는 인식에 사외이사 구인난이 매우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정 상법의 규제가 적용되는 '대규모 상장회사'의 기준을 현행 2조원에서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인 5조원으로만 높여줘도 제도 연착륙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