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지표는 개선, PF우발채무·만기 차입금은 그대로
자본성 조달 누적 3조…실질 레버리지는 확대 국면
"현금창출능력 개선 없이 의무 조달비용만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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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연말 대규모 자금조달을 마무리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지난달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이 각각 6600억원 주가수익스와프(PRS), 7000억원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시장에 퍼졌던 '유동성 위기설'은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건 모두 한국투자증권이 전량 주관했고, 시장 수요 공백을 자체 북(book)으로 상당 부분 채운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증권사가 사실상 구조조정의 첫 관문을 맡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다만 금융권의 시각은 경계에 가깝다. '옵션'을 더한 자금 조달로 계열사의 체력 약화를 덮은 임시방편이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조달을 통해 만든 자본비율은 말 그대로 지표 개선일 뿐"이라며 "본질은 영업창출력인데, 그 부분이 회복되지 않으면 레버리지 부담이 오히려 더 쌓인다"고 지적했다.
롯데건설은 이번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부채비율이 기존 214.3%에서 약 172%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다만 PF 우발채무는 여전히 3조1000억원 규모로, 이 중 1조6000억원이 1년 내 만기다. 현금성 자산과 미사용 여신한도, 이번 조달금을 모두 합쳐 약 2조원 수준의 대응 여력을 확보했음에도, 이는 '리스크 해소'가 아닌 '연명'의 성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부담은 완화되지 않았다. 올해 3분기 기준 롯데그룹 합산 순차입금은 40조원대, 순차입금/EBITDA는 7.7배로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에 걸려있다.
동시에 설비투자(CAPEX) 비용은 2023년 6조7000억원, 2024년 약 5조원으로 영업현금창출력을 계속 상회했다. 여기에 롯데지주는 내년 1월말까지 8050억원 규모 회사채·CP를 상환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룹의 '3개 축'인 건설과 케미칼, 쇼핑(유통)이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사이클 둔화 속에서 대산·말레이시아 투자 부담이 향후 몇 년간 현금흐름을 갉아먹을 전망이다.
롯데건설은 올해 3분기 기준 순차입금 2조원대를 기록했고, 누적 EBIT/매출액이 1.6%에 그쳐 영업이익률이 사실상 제자리 수준인 상황이다. 롯데쇼핑은 매출을 유지하고 있으나 점포 리뉴얼과 IT 시스템 투자로 내부현금 축적 속도가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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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인식도 엄격해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주·케미칼·건설 모두 여유가 없으면 그룹 차원의 캡티브 지원 구조도 약해진다"며 "최근 몇 년간 롯데는 어느 한 축이라도 현금을 만들어주는 구조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존에는 케미칼, 최근엔 유통이 방파제 역할을 해줬는데 올해는 그 역할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그룹 전체가 채무를 동시에 안고 가는 구조가 가장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올해 롯데그룹 조달 구조의 특징은 다층화다. PRS, TRS, 영구채, 전환상품 등 자본성·파생성 수단을 총동원해 단기 위기를 흡수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특정 시점 이후 배당·이자·정산 등 비용을 발생시키는 구조다.
신용평가업계는 롯데그룹 내 자본성·채무성 조달 누적 규모를 약 3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산 재평가로 지표는 좋아졌어도, 영업현금 증가 없이는 긍정 효과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올해 연말 진행된 1조3000억원의 단기 수혈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쇼핑과 케미칼, 건설 등의 영업 환경에 대한 구조적 지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형상 자본비율 개선 효과를 누려도, 그룹의 현금흐름이 받쳐주지 못하면 구조적 부담만 쌓인다는 지적이다.
차입금의 롱-숏 만기 미스매치, 자본성 상품의 비용, 차환 압박, PF 노출, 유통 부문 캐시카우 약화 등으로 인해 롯데그룹이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앞선 신평사 관계자는 "지표상 재무는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매년 의무적 비용이 늘어난 구조"라며 "조달 수단이 다양해졌다는 건 오히려 레버리지가 여러 형태로 분산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