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산하 바이오社는 백신 등 초점
혁신 투자 vs 레거시 사업으로 갈린 바이오
리밸런싱 흐름서 비껴갔지만…가능성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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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연말 인사를 마무리하며 내년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운영 효율을 앞세운 사업재조정(리밸런싱)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의 성장 핵심이 된 '바이오'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목된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SK㈜와 최창원 부회장의 SK디스커버리가 각각 바이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 산하 기업들은 신약 개발과 혁신 분야 발굴에 집중하는 반면, SK디스커버리 산하 기업들은 안정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그룹은 지난달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 데 이어 이달 임원인사와 계열사별 조직 개편을 시행했다. ▲리더육성 ▲실행능력 제고 ▲조직혁신 ▲내실강화를 인사핵심으로 내건 가운데 1980년대 신규 임원을 대거 발탁한 점이 두드러졌다. 젊은 인재 수혈에 초점을 맞춘 만큼 조직 개편 역시 이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기업전략, 사업추진 등을 담당하는 전략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승진 인사는 아니나 점차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최윤정 본부장이 전략본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SK바이오팜 사장 직속으로 방사성의약품(RPT)본부가 신설된 점도 눈에 띈다.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성물질로 암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기기, 제품을 말한다. 최 본부장이 방사성의약품 사업 추진 기반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나섰다고 알려진 만큼 향후 방사성의약품과 관련한 성과가 나오면 그의 치적이 될 공산이 크다. 최윤정 본부장은 실제로도 SK바이오팜이 방사성의약품 후보물질을 여럿 도입하거나 사업 전략을 발표하는 데 직접 나서왔다.
시장에서는 SK바이오팜이 장기전략으로 방사성의약품을 선택한 것을 두고 의외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방사성의약품은 통상 암 진단기기로 많이 개발돼 있지만, SK바이오팜처럼 '치료제'를 개발한 사례는 많지 않아서다. 미국에서 허가받은 방사성물질 기반 치료제는 10여종이 나와 있고, 몇 년 전부터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하며 개발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방사성의약품은 SK바이오팜이 개발 경험이 있는 신경질환 분야와도 동떨어진 분야라 말 그대로 '신규사업'이라는 평가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SK㈜ 아래 SK바이오팜와 SK팜테코를, 최창원 부회장의 SK디스커버리 아래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플라즈마를 통해 바이오 사업을 추진한다.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 이후 미국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으며 SK팜테코는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북미, 유럽의 세포유전자치료제(CGT) 공장을 연달아 인수하며 미래에 베팅했다.
SK디스커버리 산하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는 각각 백신과 혈액제제 등 다른 의약품보다 수익성이 낮은 분야를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다. 백신 사업은 코로나가 유행할 당시 크게 주목받았지만 이내 사업성이 고꾸라졌고 혈액제제 사업은 제품 원가가 높고 가격은 낮은 구조라 해외 시장 진출 외에는 실적을 폭발적으로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모회사인 SK케미칼 제약사업부도 한때 매각이 거론됐던 만큼 '미래 성장' 측면에선 다소 비껴서 있다.
이는 기업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모습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 이후 떨어진 실적을 회복하기 위해 독일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을 인수했으나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손실 규모는 줄어들었으나 독일 공장을 인수한 효과인 탓에 백신 사업 역량 강화 없이 인수 기업에 실적을 의존하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장을 추진하던 SK플라즈마는 기업가치를 시장에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가운데 기업공개(IPO) 일정도 다소 지연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런 사업들은 경쟁 기업이 많지 않고 실적을 꾸준히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에 초점을 맞춘 사업을 추진하긴 용이하다는 평가다. 백신은 가격은 낮지만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사업이 매년 시행되고, 혈액제제도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는 치료를 위해서라도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기업이 필요하다. SK케미칼과 같은 제약기업은 수십년 동안 판매해온 제품을 중심으로 현금을 꾸준히 벌어들이고 있고, 해외 기업의 제품을 국내 판매하는 전략으로 추가적인 매출 상승을 노리고 있다.
SK그룹이 고강도 리밸런싱을 진행할 동안 바이오 사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역시 일각에서 거론됐던 만큼 두 갈래로 운영되고 있는 바이오 사업 전열을 어떻게 정리할지 관심이다. SK그룹은 기업마다 각기 다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몇몇 기업들은 큰 틀에서 의약품 생산 등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어 이를 재편하기 위해선 다소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