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도 '맛집'에만 줄섰다...될 딜만 되고, 바쁠 곳만 바빴던 2025년
입력 2025.12.18 07:00
    시장 침체 속 양극화·쏠림 현상 심화
    트로리 거래 호황, 중소 거래는 썰렁
    역량·실적 좋은 자문사만 일감 몰려
    내년에도 '빈익빈부익부' 이어질 듯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자본시장에선 양극화가 심해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전반적인 투자 심리 위축 속에 질질 끌리는 거래가 많았는데 1등 사업자나 안정적인 인프라성 자산 관련 거래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자문 영역에서도 상위권 업체에만 일감이 몰리는 경향이 짙었다.

      올해 경영권 매각 거래 중에선 DIG에어가스가 최대 규모였다. 당초 전방산업의 부진으로 매도자의 희망가를 맞춰줄 곳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많았는데 이후 글로벌 사모펀드(PEF)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몸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 시장 확장을 노리는 에어리퀴드가 원매자의 기대를 충족하며 승자가 됐다.

      SK이노베이션의 LNG 사업 유동화 거래도 올 한해를 뜨겁게 달궜다. 각 지역의 발전사업자로서 안정적인 실적을 낸다는 점이 부각됐다. 역시 글로벌 PEF들이 초반 경쟁 구도를 형성했는데 메리츠금융그룹이 SK그룹에 유리한 구조를 제시하며 승리를 따냈다. 

      이 외에 렌탈사업 1위인 롯데렌탈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인수자로 나섰고, 세탁 1위 크린토피아는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하기로 했다. 부동산 운용 1위 이지스자산운용 역시 막판까지 인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후에도 경쟁자 측에서 절차상 문제를 지적할 정도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국내 M&A 시장의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지만 챔피언 에셋(국내 1위 사업자) 거래는 원활하게 이뤄졌다"며 "매도자가 설정한 몸값이 높았음에도 결국 원매자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중형급 거래나 시장 지위가 모호한 거래들은 무산되거나 시일이 질질 끌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HS효성첨단소재의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이나 E&F PE의 코엔텍 매각 등은 본입찰 후에도 금액 조건을 두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난이도가 높은 거래들은 '손을 탄' 거래라는 평가를 받게 될까 쉬쉬하며 원매자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

      해외 투자은행(IB)에 있어 국내 IPO는 계륵이다. 공모 규모가 조단위인 대형 거래라도 주관사 너댓 곳이 끼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미미하다. 이에 한국 IPO에 관심을 두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았는데, 무신사 IPO에선 주관 수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최대어 중 하나라는 상징성이 있고, 다른 거래보다 주관 수수료율도 높게 정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는 해외 큰 손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눈에 띄었다. 인프라 성격 거래에선 대부분 글로벌 PEF가 상대방으로 정해졌다. 올해 국내 PEF에 대한 시선이 악화한 가운데서도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를 소진하려는 대형사의 행보도 분주했다.

      EQT파트너스는 리멤버앤컴퍼니와 더존비즈온 등을 인수했고, 필리핀 기업 졸리비는 작년 컴포즈커피에 이어 올해 노랑통닭 인수를 검토했다. EQT파트너스와 졸리비가 없으면 회수하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자문 업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이름값이 높았던 IB나 최근 성장세를 보이는 회계법인에 일이 몰리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새로 IB 대표를 세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옛 위상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양 사는 DIG에어가스, 이지스자산운용, GS이니마, 더존비즈온, 테일러메이드 등 조단위 거래에 이름을 올렸다. UBS는 SK이노베이션 LNG 유동화, CJ피드앤케어, 크린토피아 등 주목도 높은 거래를 다수 이끌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내 시장에 전문성을 가진 회계법인의 위상이 높아졌는데, 작년과 올해에는 회계법인 사이에서도 체급차가 부각되는 모습이다. 삼일회계법인이 대기업과 PEF의 거래, 구조조정, 평가 업무 등 전 영역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다른 곳들은 염가 공세로 대응하거나, 삼일회계법인이 하기 어려운 거래만 노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삼일회계법인이 파트너들의 힘을 앞세워 좋은 거래를 먼저 가져가다 보니 다른 경쟁사들은 수임을 따내기 위해 더 무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중에선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독주 속에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의 2위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매출 규모가 엇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각 특장점을 가진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광장은 대기업 M&A, 태평양은 국제 소송, 세종은 개인정보보호, 율촌은 책무구조도 관련 분야에서 시선을 모았다.

      증권사 사이에서도 체급별 역량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자본을 활용한 투자 전략이 각광받고, 증권사나 계열사의 자금력을 활용해 거래 종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라는 무기를 쥔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년에도 정책, 환율 등 국내외 변수로 인해 시장의 파이가 크게 늘긴 어려워 보인다. 어정쩡한 자산은 시장의 관심을 얻기 어려운 반면, 수위권 업체 M&A는 문전성시를 이룰 전망이다. 확실한 실적과 업무 역량을 갖춘 자문사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쏠림 현상, 빈익빈부익부 양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