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력 발생 뒤에도 정정 요구…업계서도 '이례적' 평가
상장 독려 메시지와 달리, 심사·공시는 더 촘촘 '양면성'
"AI·반도체 등 인기 테마, 세미파이브가 기준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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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전까지 증권신고서의 '효력발생'은 감독당국의 심사 절차가 끝났으며, 더 이상의 수정이 필요없다는 '최종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본시장법상 '효력발생' 이후에만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최근 반도체 설계 기업 세미파이브의 '효력 발생 후 정정공시'는 이런 측면에서 증권가의 관심을 끌었다. 이른바 파두 사태 이후 금융당국의 신고서에 대한 '심사 원칙'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미파이브는 상장 준비 과정에서 증권신고서 정정을 세 차례 진행한 데 이어, 신고서 효력이 발생한 이후인 지난 17일에도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별도의 보완 공시를 추가로 제출했다. 효력 발생 이후까지 정정 공시가 이어진 것은 최근 기업공개(IPO) 사례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금융당국은 세미파이브의 증권신고서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도 "공모가 확정 공시 전에 실적 등 추가적인 정보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는 이런 요구에 따라 신고서 효력 발생과 무관하게 별도의 공시를 내고, 연말 실적 흐름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
한 증권사 IPO 실무자는 "효력 발생 이후 공시를 하나 더 요구받은 것은 일정상·관행상 모두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당국이 특히 민감하게 본 부분은 결산일 이후 실적 변동 가능성이었다. 세미파이브는 11월 가결산 수치를 공시했고, 결산이 완료되지 않은 12월 실적에 대해서는 정량 수치 대신 정성적 코멘트를 덧붙였다.
회사는 정정 공시를 통해 "2025년 3분기 검토 이후 11월까지의 잠정 매출액과 영업손익을 토대로 연간 사업 실적을 점검하고 있다"며 "고객사 및 파트너사별 계약 시점과 양산 제품 인도 시점에 따라 변동성은 존재하지만, 계획했던 수준의 연간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정정 요구의 배경으로는 이른바 '파두 사태' 이후 강화된 당국의 문제의식이 거론된다. 매출 급감 사실이 상장 이후 드러나며 논란이 된 파두 사례 이후, 기술특례상장 기업에 대해서도 기술 평가와 별개로 사업성과 수익성에 대한 검증 요구가 함께 강화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같은 반도체 업군으로 분류될 수 있는 세미파이브 역시 이러한 기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AI·바이오 기업 상장을 독려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에도, 실제 심사와 공시 단계에서는 보다 보수적인 접근이 병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연말 결산을 앞둔 시점에 특정 월의 가결산 수치를 별도로 공시하고, 향후 실적 흐름에 대한 설명까지 요구받은 점은 상장 준비 과정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연히 현장에선 혼란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결산 실적'을 어디까지 반영할지, 어디부턴 멈출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추가 공시와 관련해서도 한 증권사 실무자는 "결산 전 실적에 대한 설명이 또 다른 책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을 전했다.
정정 공시 횟수를 둘러싼 미묘한 기류도 감지된다. 당국이 형식적으로 횟수를 맞추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정정을 몇 차례 거쳤는지가 중요하게 고려되는 듯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정정은 최소 서너 번'이라는 인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증권사 한 IB 실무자는 "하반기 들어 거래소가 예심 청구를 독려하고 특례상장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언급도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막상 상장 절차에 들어가면 검증 강도는 이전보다 더 촘촘해진 느낌"이라며 "세미파이브는 그 체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AI·반도체 등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핵심 투자 테마 기업 전반에서, 향후에는 세미파이브와 유사한 수준의 검증과 공시 요구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