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EV 세액공제 조기종료…EV향 물량 성장세 둔화
ESS 구조적 성장…다만 EV 대비 시장 규모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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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2차전지) 업종을 바라보는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시각은 2026년에도 여전히 냉랭하다. 전기차(EV)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이 구조적으로 고착된 가운데, 에너지저장장치(ESS)만이 사실상 유일한 물량 증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ESS 역시 단기간 내 업황 반전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공통적이다.
최근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이차전지 업종의 실적 전망을 '비우호적',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NICE신용평가는 실적 전망은 '유지'로 제시했지만, 등급 전망은 '부정적'을 유지했다.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EV 중심의 기존 사업 구조로는 당분간 유의미한 실적 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신평 3사의 판단은 일치한다.
신평사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요인은 전방 EV 시장의 수요 둔화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후퇴하고 규제가 완화가 이뤄졌다. 완성차 업체들은 EV 출시 일정을 늦추거나 내연기관·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친환경차 정책 후퇴 기조 뚜렷해졌다. 지난 7월 발표한 대규모 감세법안엔 EV 세액공제 조기종료가 담겼다. EV 구매 세액공제 종료는 중·저가 EV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이차전지 최대 수요처인 EV향 물량의 성장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과잉 구조가 이미 고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셀 3사가 미국 현지에 대규모로 투자한 신공장들이 가동 단계에 접어들면서 수요 둔화 국면에서도 고정비 부담은 불가피해졌다. 증설 계획 축소와 가동 시점 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2026년까지는 낮은 가동률과 수익성 압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신평사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ESS는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물량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에 따라 전력 공급망 안정화 수요가 커지자 ESS 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구조적 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다. 또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고율 관세와 보호무역 기조는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보한 국내 셀 업체들에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ESS 역시 '구원투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데 신평사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ESS 시장 규모는 여전히 EV 시장 대비 제한적이다. EV용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거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체제로 이동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ESS 물량 증가가 EV 수요 둔화의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상쇄하는 시점은 오는 2027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셀 업체와 소재 업체 사이에서 업종 내 신용도 양극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셀 업체들은 AMPC(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보조금 수익과 ESS 전환을 통해 수익성 하방을 방어할 수 있다. 반면 소재 업체들은 낮은 가동률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ESS 중심의 LFP 전환에서 실질적인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특히 ESS 시장이 LFP 배터리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점은 기존 삼원계 양극재 중심의 국내 소재 업체들에게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이차전지 산업의 중장기 성장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투자로 채무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EV 수요 부진이 이어졌다. 수익성 개선 여부를 지켜본 후 신용도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