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포스코 美 합작법인 본궤도…조달 방식·회계 처리는 미지수
입력 2025.12.23 07:00
    관세·중국 저가 압박 속 美 현지화 승부수란 평가
    지분 구조는 정리됐지만…차입·회계 처리는 '미정'
    연결 VS 지분법…4조원 차입금, 여전히 재무적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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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합작 투자 구조를 확정하며 장기간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던 미국 현지 생산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올랐다. 현대제철을 포함한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간의 지분 구도가 명확해지며 "누가 얼마를 부담하느냐"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다만 외부 차입 조달 방식과 회계 처리 여부는 여전히 남은 과제로 꼽힌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16일 각각 공시를 통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한 출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총 투자비는 58억달러(약 8조5000억원)로 자기자본과 외부 차입을 각각 50%씩 조달하는 구조다. 2029년 상업 생산이 목표다.

      자기자본 29억1000만달러(4조2795억원) 가운데 현대제철이 14억6000만달러(약 2조1522억원)를 부담하고, 포스코가 5억8000만달러(약 8586억원)를 투입한다. 출자금은 제철소 건설 기간 동안 분할 집행되며, 최종 납입 시점은 2027년 말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각각 4억4000만달러씩 투자해 지분 15%씩을 확보한다. 

      최종 지분율은 현대제철 50%, 현대차 미국법인 15%, 기아 미국법인 15%, 포스코 20%이다. GM이나 미 현지업체 등이 함께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이들은 최종적으로 빠지게 됐다. 

      그간 시장에선 현대제철의 재무 여력을 감안할 때 그룹 차원의 자금 수혈이 상당 부분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자기자본 부담분 4조원 안팎을 현대차그룹 2조원, 현대제철 1조원, 포스코 1조원 수준으로 나눌 것이란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최종 구조에선 현대제철이 자기자본의 절반을 부담하게 됐다. 

      현대제철은 이번 투자로 약 2조1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올해 3분기 기준 현대제철의 현금성자산은 2조1236억원이다. 연간 4000억원 내외의 현금창출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7년 말까지 분할 납부는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현대제철 측도 2조원가량의 자본 부담은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이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투자업계에선 이번 투자에 따른 현대제철의 회계상 부담 비중에 대해 명확한 계산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분 구조는 확정됐지만 총 투자비의 50%에 해당하는 외부 차입 조달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나 미국 현지 기술보증 성격의 기관을 통해 저금리로 조달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조달 주체와 방식, 금리 조건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 제철소 합작법인의 회계 처리 방식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4조원이 넘는 부채가 현대제철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될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현대제철은 "외부 차입 방안과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회사는 합작법인이 지분법 대상이 될지, 연결 대상으로 편입될지는 향후 회계 감사인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이 50%의 지분을, 현대차그룹 전체로 보면 80%의 지분을 가져가는 만큼 현대제철은 합작법인에 대한 주 사업자다. 다만 이를 연결 대상으로 편입할 경우 합작법인의 차입금이 현대제철 재무제표에 반영되며 부채비율이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3분기 현대제철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은 71.1%, 순차입금은 7조2445억원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이번 투자와 관련해 회사와 회계 처리 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사안이 없어 전체 투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엔 이른 상황"이라며 "현대제철의 실적이 부진하긴 하나 일정 수준의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는 만큼 자기자본 투자 자체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 4조원가량의 차입금에 대해서는 향후 회사 결정 사항에 따라 추가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작법인이 현대제철 실적에 연결로 반영돼야 하는지, 지분법으로 반영돼야 하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합작법인이 현대제철 실적에 연결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투자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서 수익성 높은 제품을 대규모로 생산하거나 사업 외형을 키워 전사 실적을 끌어올리려는 게 이번 투자의 본질인데, 그런 구조가 아니라면 굳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이유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시선도 있다. 일각에선 전기로라는 신기술을 미국 현지에 적용하는 투자라는 점에서, 연결 반영시 사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장부상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 있단 이야기도 오르내린다. 

      재무적 상황을 별개로 놓고 보면, 시장에선 이번 투자가 현대제철과 포스코 모두에 전략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철강사들은 50%의 대미 관세 장벽과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으로 수익성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노조 이슈까지 겹치며 비용 부담이 한층 커진 상황이다. 미국 현지 생산은 단순한 설비 확장이 아니라 보호무역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의 성격이 짙다. 

      포스코의 경우 북미와 남미에 구축한 스틸서비스센터(SSC) 사업망과 주요 고객사에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철강재를 공급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 최대 철강사 중 하나인 클리프스에 조 단위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는 것도 맥을 같이 한다는 평가다. 

      현대제철은 현대차 미국 생산라인에 필요한 자동차 강판을 관세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전기로 기반 자동차 강판 생산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현대차그룹은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강판 중 기술 난도가 높은 외판은 한국에서 생산해 공급하고,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은 내판은 미국 현지에서 조달하는 구상이다. 

      한 증권사 철강 담당 연구원은 "지분 구조가 정리되며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고, 그룹 차원의 지원도 분명해진 만큼 미국 투자에 대해 시장이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현지에서 상공정까지 확보할 경우 관세 부담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