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와 '같은 듯 달라'…전통 기업과는 차별점
무신사 주관사와 겹치지 않게 선정할 가능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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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제조·판매업체 구다이글로벌이 기업공개(IPO)를 위한 주관사 선정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유사한 시기 상장을 추진 중인 무신사의 존재가 가장 큰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무신사가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제시했던 바 있다. 기업가치 10조원 안팎으로 비슷한 수준이 거론되는 구다이글로벌은 '무난한 상장'을 목표로 보다 실무 중심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구다이글로벌은 이달 초 국내 주요 증권사 및 외국계 IB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고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RFP를 수령한 증권사들은 2026년 1월 14일까지 제안서 제출을 마감해야 한다.
회사 측은 소개자료 제공, Q&A 세션 등 완성도 있는 제안서 작성을 위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구다이글로벌은 제안서를 수령한 뒤 1월 말 프레젠테이션(PT)을 거쳐 주관사단 선정 절차를 마치고 본격적인 상장 준비에 착수할 전망이다.
내년 IPO 시장의 대어로 꼽히는 구다이글로벌은 RFP 배부 이전부터 증권사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대기업 계열사 등 중복상장 논란이 없고, 예상 몸값이 최대 10조원까지 거론되는 데다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라는 점에서 향후 추가 거래 기회가 많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이미 무신사 사례로 한 차례 '여러운 시험'을 거친 증권사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다. 구다이글로벌의 RFP는 전반적으로 평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신사의 주관사 선정은 역대 IPO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았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무신사 측이 희망하는 몸값이 10조원을 웃도는 만큼, 높은 기업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혔다.
다만 구다이글로벌 역시 무신사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높은 성장세를 보인 기업인 만큼, 기존 전통 기업의 RFP와는 차별화된 항목을 다수 포함시켰다.
구다이글로벌은 IB 업계에서 실제로 투자자를 유치했거나 투자 유치에 성공한 사례를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무신사가 RFP에서 상장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IB가 어떻게 조율·해결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물었던 것과 결이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국내 증권사를 대상으로는 영업권 등 무형자산 상각 이슈에 대한 대응 사례를 요구했다. 이는 구다이가 그간 다수의 M&A를 진행해온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각 거래소 및 금융감독원 심사 과정에서 경험한 주요 이슈와 그 해결 사례를 제시하도록 했는데, 이는 기존 RFP에서는 비교적 드물게 포함되던 항목이다. 이와 함께 회사를 한 줄로 함축해 표현할 수 있는 문구도 제출하도록 해, 직관적이고 눈에 띄는 메시지를 주문했다.
앞서 주관사단 선정에 나선 무신사는 RFP 배포 전 무신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직접 각 증권사 IPO 부서를 찾아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비교적 이례적인 절차를 보인 바 있다. 또한 RFP의 기본 틀은 일반적이었지만, 무신사 측은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요구했다는 평이었다. 수십쪽 분량의 제안서에 공모 구조 제안과 에쿼티 스토리 완성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구다이글로벌의 상장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무신사 상장 주관사단에 속한 증권사들이 다시 선정될지 여부를 관전 포인트로 보고 있다. 이미 무신사 상장 주관사로 선정된 곳들을 구다이글로벌이 중복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에서다.
앞서 무신사는 외국계 증권사 가운데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JP모간을 공동 주관사로 선정했다. 국내 증권사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KB증권을 공동 주관사로 낙점했다.
무신사와 구다이글로벌은 업권이 완전히 일치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상장 시장에서는 사실상 경쟁사로 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상장 준비 시기가 겹치고, 희망 기업가치 역시 10조원 안팎으로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업적으로도 '의류와 화장품'이라는 점에서 '반도체와 화장품'처럼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두 기업 모두 B2C 사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타깃 고객층이 유사하고 최근 몸값이 빠르게 상승한 ‘비(非)대기업’이라는 점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상장 과정에서 잠재 투자자 풀이 겹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들이 상장 기업 투자에 나설 경우 의류·화장품 업종이 같은 섹터로 묶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장 시기가 비슷할 경우 제한된 투자 여력을 한 기업에 집중하거나, 두 기업에 나눠 배분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구다이글로벌은 외국계 IB 2곳, 국내 증권사 2곳 안팎으로 복수의 주관사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간 거래를 대부분 자체적으로 진행해온 만큼 특정 증권사나 IB와의 밀접한 관계는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무신사 입장에서도 주관사 선정 당시 모든 후보사가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을 텐데, 구다이글로벌까지 동시에 추진한다면 달갑게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법적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무적으로는 고객사와의 관계를 고려해 대형 딜이 겹칠 경우 참여를 자제하라는 내부 판단이 내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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