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가 대통령까지 나설 일?" vs "김범석 의장이 자초한 일"
입력 2025.12.26 16:03
    Invest Column
    쿠팡 정보유출 사태 한 달
    급기야 대통령실까지…부총리 범정부TF 구성
    청문회 의결에 여야 격돌…피로감 커지는 쿠팡사태
    초호화 대관 인력으로 이슈 막던 쿠팡
    '한강의 기적' 운운하던 김범석 의장 행방은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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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여파가 사그라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수세에 몰린 쿠팡이 "전직 직원이 저장한 정보는 3000개뿐이며 외부 유출은 없었다"고 주장하자 급기야 대통령실이 나서 범(汎) 정부 차원의 초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소비자 개인은 물론, 기업 그리고 국가 산업안보 차원에 까지 중대한 사안인 점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이례적이지도 않은 대기업 개인정보 유출 사태인데다 사실관계와 구체적인 피해 금액까지 파악조차 안된 상황에서, 정부가 범부처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연말 사회적 어젠다(agenda)를 흡수해 버릴만한 사건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은 가히 총력전에 가깝다.

      유출 사건 직후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사를 즉각 시행하라"고 지시했고 ▲곧바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탈퇴 절차 시정 방안을 요청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를 열었고 ▲경찰청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공정위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고 ▲금융감독원은 소비자경보 등급을 '주의'에서 '경고'로 상향했다.

      23일엔 국회 과방위가 전체회의서 의결해 이달 30일부턴 연석 청문회가 열린다. 청문회엔 과방위를 비롯해 정무위원회·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 등 6개 상임위가 참석한다. 여당을 중심으로 청문회가 재차 추진되자 쿠팡 사태는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국민의힘 측은 청문회 무용론을 앞세워 "국정조사 특위구성과 정부 조사가 먼저"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쿠팡을 대하는 정부의 초강력 대응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올해만 보더라도 통신3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있었고, 롯데카드·신한카드 등 금융사들의 사고가 잇따랐다. 그때마다 각 회사 대표급 인사들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각종 청문회에 불려나가 질타를 받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정보 유출 사고가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인 것은 맞지만 소관 부처와 이를 담당하는 상임위 차원에서 마무리하는 수준으로 매듭지어졌다. 물론 쿠팡 유출 사태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큰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과 국무총리 급기야 장관급 인사들이 한데 모인 전례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최고위급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어 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김범석 의장을 청문회에 세우겠다며 쿠팡을 몰아세우던 모습과는 달리, 국회에선 외국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상임위에 출석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김범석 의장을 청문회에 세우겠지만, 오지 않으면 입국 금지하겠단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쿠팡 CEO가 올해 한번도 한국에서 만난 적 없다는 '미국인' 김범석 의장은 해당 법안을 어떻게 생각할까?

      모든 정부 부처가 합심하고, 국회 상임위가 총출동해 집중포화를 날린 결과물은 쿠팡의 '기습발표'였다.  

      최근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전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쿠팡을 비호하는 글을 SNS에 올리자 쿠팡의 대관력과 로비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전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허를 찔린 정부가 이처럼 총력으로 대응하는 건 쿠팡의 대응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쿠팡 사태가 이처럼 커지게 된 배경으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대응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김범석 의장 명의의 '사과문'은 한 줄도 발표되지 않았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도 없다.

      2012년 정책실장으로 합류해, 올해부터 한국 사업 단독대표를 맡았던 뼛속까지 쿠팡맨인 박대준 대표는 끝까지 책임지겠단 말과는 달리 돌연 사임했다. 그러자 한국말은 '장모님', '처제', '안녕하세요'밖에 모르는 외국인 임시 대표가 대신 청문회에 섰다. 김범석 의장의 재가(裁可)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마치 이같은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쿠팡은 올해 재계에서 대관인력을 가장 많이 영입한 기업 중 하나였다. 각 정부 부처는 물론 정치권 출신 인사까지 각분야 고위급 인사를 전방위적으로 채용했다. 이들의 활약(?)은 일부 유무형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기업의 존폐를 걱정해야할 중대한 사안에선 결국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과거 각종 사건 사고에서 김범석 의장의 행보도 재조명되고 있다. 덕평 물류센터 화재 당시, 시기가 맞물려 이사회 의장직 사임했고, 잇따른 배달 또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에서 모습을 나타낸 전례도 없다.

      기업의 오너가 불미스런 사고에 대중 앞에 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인건 분명하다. 그러나 매출의 90%가 발생하는 한국 시장에서 신뢰도가 바닥으로 치닫고, 주식시장에서 나날이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선 최고경영자의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CEO로서 소비자와 투자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있다. 

      과거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등 무게감이 큰 글로벌 CEO들이 청문회에 선 전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올해 유심 사태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했고, 최고 부호이자 미국인인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역시 국정감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상장 당시 '한강의 기적'을 운운하던 쿠팡의 오너는 지금 한국에 없다. 상장 첫날 100조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다시 보기 어려운 숫자가 됐고, 쿠팡몽(夢)에 빠졌던 국내 스타트업·기업, 큰 손 투자자들은 이미 꿈에서 깨어났다. 그나마 남아있는 소비자들마저 등을 돌린다면 날개 잃은 쿠팡의 추락은 더욱 가속화할 가능이 크다. 

      미국 기업 쿠팡에 맞서 한국 소비자들의 자존심(?)을 세우겠단 의지라면 정부와 국회의 행보를 일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증인들은 줄줄이 '청문회'에 세워 면박주기 이상의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는 상황. 쿠팡 사태에 대한 소비자와 투자자들의 피로감을 덜어줄 방안을 마련하거나, 차라리 쿠팡이 사라진 시장의 연착륙을 준비하는 게 더 나은 선택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