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M&A' 없어도 잘 나가는 삼성전자…2026년 시선은 전장·공조·가전으로
입력 2026.01.06 07:00
    M&A 뜸하다가 조단위 거래 잇따르며 주목
    오랫동안 반도체 M&A 필요성 지적됐지만
    AI발 훈풍에 M&A보다 설비 투자 중요해져
    생태계 넓힐 전장·공조·가전 등 집중할 듯
    하만협력팀·윤준오 부사장 M&A 핵심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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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M&A 시장의 변방에 머물렀지만 최근 대형 거래를 잇따라 성사시키며 존재감을 다시 드러냈다. 2026년에도 이런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반도체 관련 기업을 사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공지능(AI) 붐이 본격화하면서 M&A보다 설비 투자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자체보다는 그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장, 공조, 가전 등 영역에 집중할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는 2025년에만 두 건의 조단위 M&A를 진행했다. 5월 독일 공조업체 플랙트그룹 인수(15억유로) 계약을 체결했고, 12월엔 하만이 독일 ZF(ZF Friedrichshafen AG)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인수 소식을 알렸다. 젤스(헬스케어)와 마시모의 사운드유나이티드(오디오) 등 미국 M&A까지 합하면 삼성전자가 1년 새 성사시킨 거래만 6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2024년 이전과 대비된다. 삼성전자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M&A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한동안은 총수 부재로 주춤했고, 이후에는 사업 부진에 비용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만 인수 후 8년을 흘려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사법 리스크가 제거됐고, 회사의 자금력도 다시 채워지고 있어 M&A에 적극 나설 환경이 마련됐다.

      이전까지는 반도체 분야 M&A가 삼성전자의 가장 시급한 과제란 평가가 많았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전통 메모리의 가치는 줄고, 공들인 파운드리(위탁생산)의 시장 지위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등 성장성 있는 분야에서 매머드급 M&A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랐다. 삼성전자가 기지개를 편 2025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다음 거래는 대형 칩 M&A가 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불과 수개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AI 관련 산업이 급격히 개화하고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이 쏟아졌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고사양 제품은 물론 D램 등 범용제품까지 공급 부족에 직면했다. 예전엔 고부가 반도체 기술을 확보할 M&A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반도체 병목 현상을 해결할 설비 확장이 급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최근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맞춤 주문형 반도체(ASIC)를 속속 내놓으면서, 파운드리 분야 절대 1강인 대만 TSMC이 이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자연히 다음 순위인 삼성전자에 고객이 몰릴 수밖에 없다. 자체 파운드리 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SK하이닉스와의 HBM 격차를 빠르게 따라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설계나 패키징 분야 M&A 필요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반도체가 전략 자산화한 상황에선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얻기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보다는 전장과 공조, 가전을 아우르는 자체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쓸 가능성이 크다. 최근 성공했거나 과거에 시도했던 M&A에서 그런 고민과 전략이 엿보인다.

      전장은 삼성전자가 일찌감치 점찍은 미래 먹거리지만 한동안 제자리 걸음이었다. 하만의 디지털 콕핏은 내부 인테리어에 가까운 사업으로 인식돼 왔지만 최근 ZF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플랫폼 비즈니스로까지 확장 가능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내부 시스템과 자율 주행 시스템이 한 몸이 되어가는 흐름에 올라탔다는 평가다. 최근 자동차 관련 산업이 어려운 가운데 추가 M&A 기회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하만이 인수한 독일 ZF의 ADAS 사업은 자동차에서 눈에 해당하는 스마트 카메라를 제조한다. 삼성전자의 CIS 이미지센서 및 파운드리 역량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유럽의 고객과 협력사들을 한꺼번에 흡수하는 효과도 있다. 종합적인 제조 역량 없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전했던 애플과 대비된다.

      공조사업도 삼성전자가 힘을 쏟는 분야 중 하나다. 작년 아일랜드 존슨콘트롤즈 인터내셔널(JCI)의 냉난방공조(HVAC) 사업 인수를 추진했고, 올해는 플랙트그룹을 인수했다. 작년 미국 3대 기업인 레녹스와 합작사(삼성 레녹스 HVAC 노스아메리카)도 설립하며 미국 시장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공조 분야는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배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은 영역이다. 일찌감치 M&A를 통해 점유율을 넓혀가면 반도체나 스마트폰처럼 확실한 먹거리를 확보하게 될 수도 있다. 기후 변화가 심화하고 데이터센터(DC)가 필요로 하는 공조 설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가전 분야에도 공을 들여 왔다. 2016년 미국 프리미엄 빌트인 가구 데이코(Dacor)를 인수했고, GE의 가전사업 인수를 검토한 적도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펼칠 것으로 점쳐진다. 글로벌 수위권 사업자로서 자체 역량을 강화해도 되지만 북미·유럽 등 선진 시장 M&A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자체적으로 잘 되고 있기 때문에 설비 투자를 하면 했지 다른 기업을 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전장과 공조, 가전 등 세 분야가 M&A의 주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M&A에 나서기에 어느 때보다도 우호적인 환경이다. AI 호황을 타고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고 있다. 대부분 역외 거래니 정부의 '환율 관리'에서도 자유롭다. 이전 정현호 부회장 체제 때는 관리에 힘을 쏟다 보니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박학규 사업지원실장(사장)은 M&A에 적극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안중현 사장이 이끄는 M&A팀도 꾸려졌다.

      하만이 삼성전자 M&A의 중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사업 비중 자체는 낮지만 최근 마시모, ZF 사업 등을 인수하면서 존재감이 커졌다. 이전까지는 본사의 입김을 덜 받았기 때문에 하만이 M&A 시장을 기웃거릴 수 있었다는 시선이 많았는데, 이제는 삼성전자도 적극 하만을 지원하고 있다. 전장이 반도체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하만에 더 힘이 실릴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하만 M&A를 이끄는 핵심 인사로는 윤준오 하만협력팀장(부사장)이 꼽힌다. 윤 부사장은 과거 미래전략실, 기획팀 등을 거쳤고 삼성전자 비메모리 M&A 전반을 진두지휘해 왔다. ZF 사업부 거래를 발굴했고 플랙트그룹, 마시모 오디오 사업 거래를 도맡았다. 독일 헬라나 스웨덴 ABB로보틱스 등 성사되지 않은 거래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이병헌 기획팀 상무와 주로 손발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준오 부사장은 높은 현업 실무 이해도에 기반해 M&A 업무를 진행한다는 평가다. 자문사 네트워크도 강점이다. 거래 전반을 챙기려면 M&A팀이나 기획팀에 몸담는 게 낫다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경영진에선 사업부서와 적극 교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윤 부사장을 하만협력팀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M&A팀이 관리·감독 역할을 한다면 실무는 하만협력팀이 주도하는 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윤준오 부사장이 실제 거래들을 주도하고 성사시킨 사례가 많아 자문사들과의 네트워크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