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프라'로 재정의하겠단 것
5대 가상자산 거래소 모두 영향권
네이버·미래에셋 딜 변수 작용 전망
업계 반발 확산…"현실성 떨어진다"
당국의 공공성 명분에도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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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율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추진 중인 가상자산 거래소 인수에도 적잖은 변수가 생길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위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주요 쟁점 조율 방안'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대주주 지분율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체거래소(ATS)에 준하는 '금융시장 인프라'로 규정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대체거래소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의결권 있는 주식의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와 대체거래소는 다수의 증권사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증권사와 같은 일반 사업자가 아닌 한국거래소와 같은 '인프라 기관'으로 보고 공공성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라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통제하겠단 것인데, 국회와도 어느 정도 합의된 내용이라 현재로서는 법안 진행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금융위는 소수 창업자나 특정 주주가 거래소 운영 전반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운영 수익이 집중되는 점을 지적했다. 또 가상자산 거래소가 ▲대주주 적격성 요건 ▲준법감시인 선임 ▲감사위원회 설치 등 지배구조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고 봤다.
규제가 도입될 경우 국내 5대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의 최대주주들은 지분 매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두나무는 송치형 회장의 지분율이 25.52%이며, 빗썸은 빗썸홀딩스가 73.56%를 보유하고 있다. 코인원은 창업자인 차명훈 대표가 53.44%, 코빗은 NXC가 60.5%, 고팍스는 바이낸스가 67.45%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거래소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M&A 거래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두나무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 중이고, 미래에셋금융그룹도 코빗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거래는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앞당기고 웹3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관련 안이 법제화된 것은 아니지만 규제 방향이 구체화하며 딜 성사 가능성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두나무와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공식화한 상태다. 거래가 완료되면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의 100% 자회사가 된다. 양사는 향후 추가적인 합병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며,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 산하 자회사로 존속할 예정이다.
문제는 거래가 마무리되면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 지분 전량을 보유하게 된단 점이다. 최대주주 지분율 제한이 도입될 경우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거래 추진 과정에서 해당 사안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규제 논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양사 간 합의가 이미 이뤄진 거래인만큼 딜이 전면 무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거래 구조를 바꿀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법안 통과 시에는 두나무가 보유한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분리해 별도 주주 구성을 갖추는 등 거래 구조를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래에셋금융그룹 또한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코빗의 최대주주인 NXC(지분 60.5%)와 2대 주주 SK플래닛(31.5%)이 보유한 지분 전량 인수를 추진하며 현재 MOU(양해각서)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가상자산 사업 확대를 숙원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그룹 차원의 시너지 창출을 염두에 둔 거래로 해석된다. 인수 주체로 미래에셋컨설팅을 내세워 금산분리 이슈를 우회하도록 구조를 짰다.
규제가 현실화하면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인수 이후 대주주가 초과 지분을 불리한 조건으로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0% 이하 지분 인수를 전제할 경우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 거래 실익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에 미래에셋그룹이 염두에 둔 인수 구조 또한 코빗 지분 90% 이상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자산 사업은 박현주 회장의 숙원에 가깝지만, 20% 미만 지분으로는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할 수 없어 인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미래에셋그룹이 거래 성사를 위해 별도의 대안을 검토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빗썸의 경우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분을 희석한 후 잔여 지분을 처리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단 목소리가 많다. 국내에선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 선례가 없는 데다 잔여 지분 처리 방안도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
가상자산 업계에선 금융위 조치가 비현실적이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단 볼멘소리가 나온다.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설립된 민간 기업의 지분 구조를 사후적으로 손보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충분한 검토나 업계 의견 수렴 없이 발표된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분을 분산하면 이용자 보호나 리스크 관리가 강화된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해당 안이 추진될 경우 디지털자산과 전통 금융의 결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전문가는 "지분 정리가 불가피해질 경우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할 것인지부터가 문제"라며 "주주와 회사 모두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성과 투명성 때문이라면 비상장주식 거래 시스템에도 유사한 규제가 적용돼야 하지만 현재 그런 논의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내세우는 '공공성 강화' 이면에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전통 금융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관리·통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표면적으로는 공공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전통 금융회사 수준의 감독 체계를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적용하려는 것으로도 읽힌다"며 "금융당국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단일 오너 체제라 당국 통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