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AI 기업 피하자'...투자 위해 창업 권유하는 VC들
입력 2026.01.09 07:00
    "무늬만 AI인 기업 늘어나 살 기업 없다"…선별형 투자 전략 한계 노출
    AI 데이터처리 기업 망고부스트…VC가 직접 창업 권유한 '제작형 투자'
    고(高)밸류 환경 속 지분·수익성 부담…단순 투자 역할서 공동창업으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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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공지능(AI) 붐' 속에서 벤처캐피털(VC)들이 대학 연구실과 전문연구기관 등으로 직접 들어가 창업을 권유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미 시장에 나온 기술기업을 선별해 투자하기보다, 기술이 실험실에 머물러 있는 단계부터 기업 설립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AI가 투자업계의 핵심 테마로 부상하면서 기업 밸류에이션 부담이 빠르게 높아진 반면, 실제 투자할 만한 매물은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무늬만 AI'인 기업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선별형 투자 방식만으로는 의미 있는 지분과 수익 구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확산된 것이다.

      2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용 데이터처리장치(DPU)를 개발하는 망고부스트는 VC가 대학 교수에게 직접 창업을 권유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 VC 심사역이 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여러 차례에 걸쳐 창업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된 스타트업을 발굴한 것이 아니라, 검증된 기술을 중심으로 기업의 형태를 처음부터 만들어간 셈이다. 

      이런 '제작형 투자'가 나타난 배경에는 현재 기술 투자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언급된다. 

      AI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실제 투자 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기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AI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기존 사업에 기술을 덧붙인 수준에 그친 기업도 많고, 기술 차별성과 수익 모델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 알려진 AI 기술기업들의 밸류에이션 부담 역시 VC들의 전략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초기 단계임에도 기업가치가 빠르게 높아지면서 시리즈A나 B 단계에서 의미 있는 지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기술기업 중에서 인기 테마에 편승한 유사 모델이 급증하면서 투자 유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VC 관계자는 "이름이 알려진 기업은 너무 비싸고, 그렇지 않은 곳은 리스크를 감내할만한 투자 논리를 만들기 어렵다"며 "기존의 선별형 투자만으로는 차별화가 안 되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특히 AI 분야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밸류에이션 상승 속도가 빠른 만큼, 초기 단계에서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후속 투자 라운드에서 지분 희석이 급격히 진행돼 투자 구조상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VC들은 애초에 밸류 경쟁이 발생하기 전 단계, 즉 기술이 아직 기업의 형태를 갖추기 전부터 개입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VC의 역할 역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단순한 자금 공급자를 넘어 법인 설립과 지분 구조 설계, 초기 인력 구성, 인큐베이팅과 시드·시리즈A까지 성장 경로 전반에 관여한다. 투자자이자 엑셀러레이터(AC),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 창업자에 가까운 역할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업을 고르는 시대에서, 만드는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실무자들은 이 같은 흐름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중견 VC 심사역은 "AI 거품 논란이 반복될수록 검증되지 않은 기업을 높은 밸류에 투자하는 방식은 더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회사의 자금 규모보다 기술을 읽고 이를 사업 구조로 구현해낼 수 있는 역량이 VC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