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법 개정 계기로 투자 기능 확장 논의 본격화
정책금융 중심 구조서 투자기관 역할 확대 신호
VC·지분투자 허용 이후 내부 집행 방식 고민中
하반기 PEF 출자사업 확대 기조 두고 시장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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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이 투자 행보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수출입은행법 개정으로 벤처캐피털(VC) 출자와 기업 지분투자가 가능해지면서, 기존 대출·보증 중심이던 정책금융 역할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그간 정책 목적형 사모펀드(PEF) 출자에 주력해 온 수은이 향후 어떤 투자 스탠스를 구축할지를 두고 시장의 시선이 쏠린다.
수은은 최근 VC 출자와 직접투자를 포함한 투자 기능 확대를 염두에 두고 내부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2025년 하반기 국회를 통과한 수은법 개정안에 따라, 기존 대출·보증과 연계되지 않더라도 기업 지분투자와 집합투자기구 출자가 가능해졌다. 해당 조항은 공포 이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되며, 실제 투자 집행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첫 VC 출자와 지분투자를 앞둔 만큼 내부 고민도 적지 않다. 투자 기준과 실사 방식, 집행 구조 등을 새로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법 개정을 두고 "수은이 여신기관을 넘어 투자기관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성격상 수익성과 정책 목적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VC 출자 확대와 함께 기존 PEF 출자 규모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거론된다. 수은은 매년 정기 출자사업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과 공급망 안정화를 지원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총 2000억원 규모의 출자를 집행했다.
당시 출자 사업은 정책 목적형 구조가 뚜렷했다. 운용사들은 수은 약정액의 2배 이상을 수출·해외 투자 관련 분야에 집행해야 했고, 펀드 결성 기한 역시 6개월 이내로 설정됐다. 운용 자율성보다는 정책 집행 기능이 강조된 셈이다.
이 같은 출자 관행이 향후에도 유지될지는 시장의 주요 관심사다. VC 출자와 지분투자가 허용되면서 수은이 기존의 엄격한 정책 조건을 그대로 적용할지, 아니면 일부 완화된 기준을 도입할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과 투자기관으로서의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평가다.
출자 규모 확대 가능성도 높아졌다. 수은 내부에서는 올해 하반기 정기 출자사업의 출자금액을 지난해 하반기 2000억원보다 늘리는 방안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서는 2500억~3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출자 확대 기대가 커지면서 운용사들의 관심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VC 출자와 지분투자 허용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맞물리며, 주요 GP들을 중심으로 수은과의 사전 미팅을 타진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수은의 하반기 출자사업을 염두에 둔 운용사(GP)들의 접촉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분투자 역시 주목받는 대목이다. 개정 전에는 수은 대출을 받은 기업에 한해 지분 투자가 가능했지만, 법 개정으로 이러한 제약이 사라졌다. 이에 수은은 하반기 이후 소부장, AI, 반도체 등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지분 투자 기회를 검토할 것으로 전해진다. 정책금융기관의 하우스 성격을 감안해 산업 선택은 보수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수은은 정샘물뷰티 등 프로젝트 펀드 형태의 투자를 통해 간접적인 지분 노출을 늘려왔다. 이외에도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에어인천), 포스코·LIG그룹 등을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젝트 펀드에 출자해 왔다. 정책 목적과 투자 기능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수단으로 프로젝트 펀드를 활용해 온 셈이다.
시장에서는 수은이 향후 VC 출자와 지분투자를 통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지 주목하고 있다. 기존 PEF 출자가 해외 진출과 공급망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VC와 지분투자는 보다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태생적 한계 속에서 어느 정도까지 시장 논리를 수용할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앞선 금융권 관계자는 "첫 VC 출자와 기업 지분투자를 앞둔 수은이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가 향후 하우스 성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