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업계 내 공모펀드 매니저 '역할 재정의' 압박
"ETF 시대에 펀드매니저 활용 방식이 하우스 경쟁력 직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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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지수펀드(ETF)가 자산운용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서면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인력 활용'을 둘러싼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TF가 운용사의 외형과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은 반면, 한때 하우스의 '간판'이었던 공모형 펀드 조직은 역할과 위상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ETF 중심 사업 구조 재편 속에서 기존 공모펀드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활용할 것인지가 운용사 내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2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한 대형 자산운용사는 지난해 기존 공모펀드 운용 인력을 ETF 기획은 물론, 테마 설계, 액티브 운용 등에 적극 참여토록 내부 시스템을 정비했다. 사실상 펀드매니저들을 재배치해 ETF 사업의 운용 인프라로 흡수한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자산운용사의 경우 ETF 조직에 대한 자원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공모펀드 조직과의 온도 차가 내부 이슈로 거론됐다. ETF 부문 인력·예산·보상 체계가 빠르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통 공모펀드 조직의 상대적 위축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내부 불만 및 인력 동요로 이어지기도 했다.
ETF 확대가 단순한 상품 전략을 넘어 조직 문화와 인력 관리 문제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공모 펀드 운용 인력들을 'ETF 인프라'화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의 '정답지'로 꼽히긴 하지만, 기업 문화 및 보상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모든 운용사가 이를 채택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운용사 내부의 무게중심이 ETF로 이동한 배경에는 자금 흐름의 급격한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1월 110조원에서 이달 15일 기준 203조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ETF 순자산총액은 지난해 1월 초 약 172조원에서 이달 19일 기준 324조원을 돌파했다. 불과 1년 만에 150조원 이상이 늘며, 성장 속도 면에서 공모펀드를 압도했다.
종목별 자금 유입 규모만 놓고 보면 ETF와 공모펀드 간 온도 차는 더욱 분명하다. 최근 1년간 ETF 자금 유입 상위권에는 미국 S&P500, 나스닥100 등 지수 추종형 ETF와 금·반도체 등 테마형 ETF가 대거 포진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 S&P500' ETF에는 한 해 동안 4조8500억원 이상이 유입됐고, 삼성자산운용의 'KODEX AI반도체' ETF 역시 1조48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다. 반면 같은 기간 설정액이 늘어난 공모펀드는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증가 폭이 제한적이었고, 설정액이 오히려 줄어든 펀드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시장 환경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장중 코스피가 4900선을 돌파하는 등 지수 주도의 랠리가 이어지면서, 시장 자체가 ETF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와 조선·방산 등 시가총액 상위 업종과 종목이 지수 상승을 이끄는 국면에서는,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ETF가 시장 수익률을 가장 직관적으로 담아낸다.
반면 기존 펀드매니저들은 전통적으로 가치주 및 중장기 성장 스토리 기반 운용 전략을 활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큰 반도체·방산·로봇·우주 등 테마 업종 비중을 제한적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최근 시장이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랠리를 전개하면서, 가치주 중심 전략 자체가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운용사들로서는 시장 성장성과 투자자 선호를 감안할 때 ETF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입장이다. ETF 순자산이 1년 만에 150조원 이상 늘어나는 시장에서, 전통 운용 인력을 ETF와 상품 전략 전반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녹여낼 수 있느냐가 향후 운용사 경쟁력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ETF 시장이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 급증과 힘입어 급격히 덩치를 키운만큼, 이를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은 전무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인력 재배치에 대해 심도깊은 고민을 한 하우스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인력 운용에 어떤 묘수를 내느냐가 올해 개별 운용사 성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 성장 속도를 보면 공모펀드 조직을 과거 방식 그대로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인력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기존 매니저들의 운용 역량을 ETF 상품과 전략 전반에 어떻게 재설계해 활용할지가 각 하우스들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