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향한 현대차 노조의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
입력 2026.01.28 07:00
    취재노트
    노조 "합의 없인 1대도 들여올 수 없다"
    정년퇴임 1.2만명 ,자연감소 믿고 노무에 힘뺀 현대차
    결국 협상 난항에 무분규 타결 신기록 무산
    노란봉투 힘입은 노조, 아틀라스發 노사 갈등 깊어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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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AI 생성 이미지(편집)

      19세기 초 영국에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급격한 기계화와 산업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운동이다. 생산 현장에 '기계'를 도입하면 숙련공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러다이트 운동은 5년 넘게 이어졌고, 정부가 군대를 투입하고 주동자를 처형하는 등 과격한 대응이 있고서야 서서히 막을 내렸다.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재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양산(2028년까지 3만대)과 생산현장 투입계획을 밝히자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최근 성명을 통해 "어떤 상황이 와도 노동자 입장에선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며 "분명히 경고한다. 노사합의 없는 신기술 도입은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 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밝혔다.

      아틀라스의 현장 도입이 노조와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단 점은 일견 예측이 가능했다. 

      "로봇은 초기 구입비 이후 유지비만 발생하므로 장기적으로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가에 좋은 명분"이란 노조의 지적과 같이, 노무 리스크가 사실상 '제로'에 수렴하는 로봇의 현장 투입은 기업가의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현대차 노조가 이같이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사측과 맺은 단체협약이 있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제 41조엔 회사가 ▲신기계·신기술을 도입하거나 ▲신차종을 개발하거나 ▲작업 공정 개선 같은 경영상·기술상의 변경을 할 때 조합에 즉시 통보하고 고용안전위원회를 구성해 조합과 함께 심의·의결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 즉 회사가 기존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과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선 노조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단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단체협약엔 신차종의 연구개발 등과 관련해 조합에 설명하고 의견을 반영하도록 규정돼 있고, 해외공장 설립 또는 차종 투입 계획을 확정할 시 고용안정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지난 2021년 그룹이 미국에 약 8조원(74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노조는 "회사의 일방적 투자계획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조합원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은 파국을 부를 뿐이다"고 맞섰다. 이듬해 현대차가 미국에 전기차 전용공장 건설을 포함해 약 13조원 투자를 발표한 직후 노조는 역시 "국내공장 투자가 전제되지 않은 해외공장 투자는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모두 단체협약이 있었기에 강경한 대응이 가능했단 평가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 전부터 고용에 대한 불안이 컸던 노조는 매년 해를 거듭할수록 사측과의 협상 수위를 높이고 있다. 

      매해 임금협상 시기마다 '역대급'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노조의 요구 조건은 까다로워 지고 있는데, 지난해엔 그룹이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무분규 협상 타결'이란 타이틀도 6년만에 깨졌다. 

      지난해에 치러진 노조 지부장 선거에선 강성으로 분류되는 이종철 지부장이 당선됐다. 3차례 연속 강성 집행부가 꾸려지며 앞으론 노사의 협상이 더욱 난항을 겪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사실 현대차그룹에 노무 리스크는 상수로 여겨져왔지만, 어려운 와중에서도 사측과 노조는 절충안을 마련해왔다. 강경한 노조에 맞서 사측 역시 노조와의 가교 역할을 맡아온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웠고 비교적 매끄럽게(?) 결과물을 만들어 낸 사례들도 많았다. 

      그런데 가장 오랜기간 노무 담당을 맡아온 윤여철 부회장이 2021년 퇴진한 이후, 현대차그룹은 과거와 같이 노무 역할에 힘을 싣지 않는 모습이다. 

      윤 전 부회장이 퇴진하고, 윤 전 부회장과 함께 협상의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하언태 전 사장(전 울산공장장)도 물러나자 노조를 상대할 사측의 인사는 '부사장'급으로 격하했다. 이후 이동석 전 사장이 승진하며 대(對)노조의 구심점 역할을 해 무분규 타결을 이끌었으나, 이 전 사장 역시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부턴 정준철 신임 사장이 협상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여느때보다 강경한 노조에 맞서 사측이 유의미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진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평가다.

      현대차가 예년과 같이 노무 분야에 힘을 쏟지 않는데는 현대차 인력의 자연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부터 약 5년간, 현대차 인력 가운데 총 1만2000명이 정년퇴직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인력의 자연 감소와 함께 로봇이 생산직을 대체할 수 있다는 노조의 불안감이 역대급 인상안과 파격적인 요구로 발현되고 있단 지적도 무시할 순 없어보인다.

      노사 갈등과 별개로 현대차그룹은 인사 시스템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이긴 하다. 당장 3월부턴 노란봉투법의 시행이 예고돼 있다. 지난해 미국 이민당국 이민당국에 의해 한국 기업 직원 300명이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인력 배치에 대한 문제도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 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인력 수급 리스크의 상쇄, 생산 시스템의 개조 등 현대차의 미래 가치를 좌우할 대대적인 변화를 위해선 노조와의 원만한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지만, 정작 현대차그룹 내에서 이를 이끌만한 구심점이 뚜렷하진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