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부진으로 인한 구매 물량 미달 탓
지난해 4분기도 적자…GM 계약 해지에 공급량↓
혹한기 버텨야…'동반생존' 방안 모색 필요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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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전기차 고객사 이탈이 본격화하며 배터리 셀사와 소재사 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일부 소재사는 실적을 보전하기 위해 발주처에 일정 자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객사 파이프라인이 무너지면서 셀, 소재사 모두 생존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는 평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말 고객사 LG에너지솔루션에 보상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 내 역학을 고려하면 소재사가 셀사에 청구서를 들이밀기 쉽지 않은데, 업황 악화가 길어지면서 당장 현금 마련에 사활을 거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포스코퓨처엠이 구매 물량 미달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라면서도 "지난달에도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되나 두 기업이 전기차 시장 불황 영향을 함께 받고 있는 만큼 협의는 교착 상태"라고 전했다.
문제는 LG엔솔을 포함한 셀 공급사 역시 전기차 시장 부진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상반기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서 뒷단 공급사인 LG엔솔과 포스코퓨처엠 목표주가를 일제히 낮춰잡고 있다. 핵심 파이프라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당분간 실적 부진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LG엔솔과 삼성SDI, SK온 등 셀 3사 모두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이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한 상황이다. LG엔솔은 지난 연말부터 포드, FBPS로의 공급 계약을 철회하면서 작년 4분기 1000억원 이상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반영분을 제하면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40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난다. 셀사 공급 계획에 맞춰 현지 증설에 동참한 소재사들 역시 같은 이유로 줄줄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전방 고객사 요구 조건에 맞춰 확충한 생산능력(Capacity)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인공지능(AI) 산업이 본격 부상하면서 데이터센터용 에너지저장장치(ESS)나 로보틱스용 배터리 등 대체 영역이 조명받고 있지만, 당장 가동률을 채워줄 정도의 볼륨을 갖추지는 못한 단계여서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수주가 활발한 ESS 시장도 리튬인산철(LFP) 중심으로 수요가 몰려 삼원계에 집중해 온 국내 셀, 소재사들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셀사들도 이미 지난 3년여 동안 전기차 고객사 요청에 따라 미국 정부 보조금을 공유해왔던 터라 소재사 요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셀사 역시 소재사 생태계를 함께 가야 할 파트너십으로 여기고는 있으나, 그간 누적된 재무 부담이 적지 않아서다. 공급과잉, 가동률 부족 구면이 길어지며 셀사들도 갈수록 전기차 기업에 대한 협상력이 줄어드는데, 뒷단 소재사 생태계 생존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셀 3사가 우위를 점한 건 전기차 시장 개화기 초 2~3년 정도뿐"이라며 "전기차 고객사에 최소 구매 물량 미달을 이유로 보상금을 요청하는 것도 상당히 눈치를 봐서 진행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이제 같은 논리로 소재사들도 셀사에 보상금을 요청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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