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엔 돈이 넘친다"…어려워도 고자세 유지하는 기업들
입력 2026.02.05 07:00
    취재노트
    K자형 양극화에도 금리 협상 고착 상태
    IMA·발행어음 개화에 150조원 유입
    252조원 정책금융도 유동성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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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실적이 양호한 기업과 재무 여건이 어려운 기업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자금 조달 수요가 높다. 그럼에도 시장에 유입될 자금 규모가 크다 보니 기업들이 협상 자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위축된 것처럼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월 28일 기준 회사채 상환 규모가 발행 규모를 웃돌았다. 1월 회사채 시장이 순상환 기조를 보인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이른바 '연초 효과'가 약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통상 1월은 연간 자금 집행이 재개되며 회사채 발행이 활발해지는 시기다.

      다만 유동성 자체가 고갈됐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투자 시점을 저울질하는 대기자금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발행사에 우호적인 조달 여건이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 아래 기업들이 관망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AI가 주도하는 성장 국면에서 기업들의 투자 활동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AI·반도체·데이터센터 등 고자본 집약적 산업에서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불가피해지면서 자금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흐름이다. 이외에 해외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사업이 부진하고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들의 조달 수요도 여전하다. 특히 이들은 주가수익스와프(PRS) 회계처리에 관한 제도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에 PRS를 활용한 거래를 부채로 봐야 할지에 대해 문의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반기에 여건이 악화할 기업이 많아 보인다"며 "일부 기업들은 PRS를 자본으로 인정한다는 결론이 나오면 즉시 조달에 나서 부채비율을 낮추겠다는 입장으로 문의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분간 기업과 증권업계는 조달 조건에 관한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의 조달 수요가 높지만 추후 이보다 공급이 더 많아지는 영향이다. 이에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낮은 조달 금리를 고수하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머물기도 한다.

      기업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늘어날 주된 배경으로는 증권사의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 경쟁이 본격화한 점이 꼽힌다. 증권사의 자금 조달과 투자 확대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150조원의 자금이 시장에 투입된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국내 첫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선정돼 IMA 업무를 영위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자금을 모아 대체투자, 인수금융 등 IB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양사가 선보인 IMA 상품은 출시 며칠 만에 2조원이 넘는 돈이 유입됐다.

      기존 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KB증권까지 더해 발행어음 사업은 총 7개사 구도로 재편됐다. 삼성·메리츠증권도 심사 단계에 있어 연내 사업자 수가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IMA와 더불어 발행어음에서 조달한 금액의 25%는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모험자본에는 중소·중견·벤처기업이 발행한 증권과 이에 대한 대출채권 등이 포함된다.

      최근 증권사들이 영업담당(RM) 인력을 두고 영입 경쟁을 벌이는 것도 증권사가 조달 시장에서 기업 대비 상대적 열위에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실탄'이 풍부해진 만큼 개별 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RM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실적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IMA·발행어음 경쟁과 더불어 정책금융기관이 공급할 252조원의 정책금융도 시장의 유동성을 늘린다. 작년보다 1.8% 늘어난 규모다. 이 중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 5대 중점 분야에 150조 원 이상이 집중적으로 공급된다. 정책금융 지방공급 확대목표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41.7%인 106조 원 이상을 지방에 공급한다.

      물론 반도체를 제외한 비(非) 테크 기업과 내수 기업이 부진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리스크의 하나로 K자형 회복이 거론된다. 그럼에도 시장에 풀릴 자금이 많다 보니 '이만한 유동성 환경에서 조달 못할 기업 있겠느냐'는 관전평도 나온다.

      다른 금융투자업계는 "연초 주관사와 발행사의 금리 협상이 고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자금이 급한 기업을 중심으로 발행 수요가 본격화하며 전반적인 금리 협상도 점차 조율될 것"이라 전망했다.